모던 보이(재)
어제 밤, 너무 흥분을 한 탓에 오늘 다시 차분한 마음으로, 딱 두 부분만 지적하려 한다. 주변을 살펴보니 <모던 보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독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컸던 것 같고, 배우들에 대한 부분이 그 다음을 이뤘다. 아예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면 이렇게 흥분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될듯한 것이 안 되어 그런지 안타까움, 실망감, (약간의) 분노, 연민 등이 섞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 모르겠다. (이것도 다 오버라는 거 안다. 그 누구도 내게 이래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하긴, 동시에 그 누구도 내게 이러지 말라고 할 권리도 없지 않은가.)


문제1. 생략 혹은 생략된 서사
돌아서고 보니 두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하나는 이명세의 <M>이고 두 번째는 이안의 <색.계>였다. <M>과 같은 식으로 서사보다는 이미지가 중심으로 작용하기엔 <모던 보이>는 어정쩡한 지점이 너무나 많았다. 되려, 이미지에 무게중심을 실어주고 자잘한 이야기 가지들을 과감하게 쳐냈다면 나았겠단 생각도 든다. ‘생략’ 자체에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럴 경우엔 이미지 간의 설계가 정교해서 그 나름의 이야기가 탄력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의 근간이 되는 박해일과 김혜수 간의 (운명적) 러브라인 조차 설명이 안 된다. 관객이 둘 간의 사랑 또는 운명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인물이 고뇌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은 더더군다나 설득이 되질 않는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공 들인 이미지는 미장센 과잉으로 격하되고, 스토리의 부실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다양한 촬영적 시도는 높이 살 만하지만, 그것이 일정한 도를 지나쳤을 경우엔 되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나친 흔들림과 포커스 아웃은 영상적 미학이 아니라 폐쇄적인 문법으로 간주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눈이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은 장시간 앉아있어야 하는 영화라는 매체에겐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도 있다.)
문제2. 유혹
극중 조난실을 보며,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나 인생관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흔히 말하듯, 치명적이어야 한다. 친일+날나리+모던 보이 이해명이 목숨을 바칠 정도로 혼이 빠질만한 상대여야 한다는 얘기다. 엇비슷한 이야기 구조로 이안의 <색.계>를 떠올렸다. 특히 김혜수와 탕웨이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니, 차이는 한결 명백해졌다. 여배우가 인물을 연기하며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는 (감히) 무한한 것이라 봐도 좋다. 특히 외형적 조건이 완벽한 배우가 연기력까지 겸비했다면, 그녀(들)에게 거는 관객의 기대감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극중 남주인공을 몇 번 흘겨보고 옷 자락 몇 개 떨어뜨린다고 해서 팜므파탈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카메라 뿐 아니라 그 너머의 관객의 목젖을 타고 흘러내리는 침까지도 완벽하게 콘트롤한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아니, 그를 넘어서 그게 가능해야 한다. ‘감 나와라, 배 나라와라’하는 식의 리뷰가 딱 빵점인 것은 알지만, 팜므파탈이 팜므파탈일 수 없을 때 느끼는 좌절감은 그보다 더 빵점이다. 흔히 말하는 ‘끼’와 같이, 팜므파탈은 묘한 분위기 하나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척’을 하는 것과 정말로 ‘그런 것’과는 정말로 다른 문제다. 특히 <모던 보이>를 놓고 봤을 땐 그렇다. (관객이 유혹당하고 싶어 죽겠는데, 유혹을 안 해주면- 게다가 남자주인공까지도 유혹 안 해주면. 어쩌지. 그땐 정말 어쩌지.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