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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4  축! 감성정치 르네상스
  2. 2008/08/03  그 남자의 책 (上)

축! 감성정치 르네상스

시작은 이러했다.

인간의 의지에 따른 행위의 자유는 그의 고유한 이성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이성은 인간 스스로를 구성해가는 규칙을 형성하고,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자유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한다.

중세사상가이자 정치철학자였던 존 로크가 굳이 이성의 우월성 또는 절대성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더라도 서양철학사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의지한다는 것은 대부분 무언가 미천한 것으로써, ‘감상에 빠지다와 같은 비아냥거림을 받기 일쑤인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불완전하고 카오스적이며, 명확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변덕스럽기까지 한 감성이란 요물에 영혼을 파는 것은 신경질적인 예술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행위였다. 감성정치? 웃기는 얘기다. 적어도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렇다.

1988년 미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상대후보보다 20퍼센트나 앞서가던 민주당의 마이클 S. 듀카키스 후보가 버나드 쇼를 만났다.

버나드 쇼(진행자): (당시) 주지사님, 만약 키티 듀카키스(그의 아내)가 납치당한 후 죽임을 당했다면 당신은 그 살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시겠습니까?

마이클 S. 듀카키스: 아니요, 버나드. 저는 제 전 생애를 걸쳐 사형제도에 반대해 왔습니다. 그 방지책에 대해 어떤 근거도 찾지 못하겠군요. 저는 흉악범죄를 다스리는 데 사형제도 말고 더 효과적인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토크쇼 이후 듀카키스는 순식간에 우위를 빼앗겼다. 그가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성적으로 잘못된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쇼가 기대했던 건 아마도 그의 감성에 대한 가감 없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듀카키스는 자신의 부인을 죽인 살인마에게 당연히 사형에 처하겠다고 답한 대신,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서 고수한 정책적 가치를 최우선 순위에 둔 것이다. 결국 이 토크쇼를 지켜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듀카키스의 대답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과연 사람일까’. ‘그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일까’. ‘그는 과연 내가 신뢰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서 적합한 사람일까’. 이와 같은 의문에 듀카키스는 확신을 주지 못했고, 결국 그는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감성정치의 일면이 드러난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의 이성적인 면모보다는 소소한 감성적 코드에 더 깊고 내밀한 개입의 성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뇌 과학에서는 뇌와 감성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벌여왔다. 정치 심리학자인 드류 웨스턴의 책 「정치적 뇌」에서 저자는 뇌가 정보와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을 한다고 말한다. , 정보가 욕망과 결합하면 정치적 뇌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이 욕망했던 결론을 향해 나름의 이성을 주조해낸다는 것이다. 뇌가 비단 이성적이냐 감성적이냐는 논쟁을 떠나서 자칫 이성적으로 보이기 쉬운 결정들도 대부분은 욕망과 결합한 감성적 판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정치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굳이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에서 감성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가 흘린 두 번의 눈물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녀의 첫 번째 눈물은 동정을 자아냈지만, 두 번째 눈물은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라는 조건이 달리기 때문이다. 감성()은 개인의 표현 양식 중 하나지만, 정치에서 그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해진다. 본래의 의도는 중요치 않다. 그것이 사후에 어떻게 해석되느냐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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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월 존 케리를 대선 후보로 지명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번의 연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버락 오바마(당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출마)에게는 하나의 절대적인 옵션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원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미국, 미국의 삶에 대한 대안 없는 선택이라고 믿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그의 접근법에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유사한 인물, 자신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 미국 유권자들에게 이보다 더 탁월한 호소는 없는 듯 보였다. 민주당 마지막 전당대회 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연설을 한 지 꼭 45년째 되던 날, 오바마는 그의 또 다른 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양한 인종문화적 체험을 쌓아온 삶을 통틀어 스스로 작은 미국임을 강조했던 그가 약속한 은 이성적 선상에서만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고백적 어투와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어쩌면 고도로 훈련되었을 지 모를) 진정성은, 적어도 듣는 이의 감정을 동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매케인에 비해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오바마는 줄곧 감성적 전략을 취한다. ‘그래요. 나는 어쩌면 (정치에 대해) 아직 잘 모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는 그 말을 우회적으로 ‘Yes, We Can’으로 치환한다. 그럼으로 인해우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우리를 이루는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민주주의’, ‘미국’, ‘미래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란 구호를 외치게 하는 것이다. 비록 그 민주주의가, 그 미국이, 그리고 또 그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처칠이 지적했듯이제껏 시도된 모든 체제를 제외하고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정치체제일는지 모른다. 이성적 판단을 배제한 상태에서 다수가 감정을 좇아 (대선과 같은) 국가적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많은 정치체제 안에서 다분히감정과 연루된 결정들이 이뤄졌고, 그를 통해 역사는 피를 흘리기도 성장을 경험하기도 했던 것 아닌가. 이성과 감성 중 무엇이 더 우월하냐는 지지부진한 논쟁은 근대 이전으로 덮어두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이성을 움직이는 건 단연 합리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한층 나아가 감성이 작동하는 데 이성적인 요소가 적절히 배치될 때 한층 임팩트 있는 전달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감성정치는 이러한 감성과 이성 간의 관계학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사회의 불안정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덩달아 그 불안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보라색이 커밍 쑨 코드로 점쳐지고, 그 덕에 조만간 온 도시가 보랏빛 물결로 뒤덮일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 다소 소름 끼치는 광경이지만, 감성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 어떤 사회과학적인 접근방법으로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짜릿하지만, 이내 절망감을 안겨준다. 그 어떤 성공모델도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던 시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사이로 감으로 때리는 식의 시도들이 횡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 좋은 사람이 선봉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모양새도 비슷해졌다. 학식이 많고, 경험이 많은 것은 관련 서적에서나 늘어놓을만한 얘기가 되었다. 이성적 데이터보다는 감성적 결정력을 응집하는데 더 많은 전략가들이 몰려들어야 한다. 숫자보다는 이미지 하나가 개개인의 심장뿐 아니라 뇌까지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덕훈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중략)

사랑은 리얼이고 필링이고 터치지요.”

이를 빌어 정치에 대해서도 재정의해 볼 수 있겠다. ‘정치는 이제 리얼이고 필링이고 터치라고 말이다. 나아가 수 백 년의 정치사를 뒤집을 만한 주장도 가능할 게다. 지금껏 인류는 단 한 번도 전적으로 이성에 근거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고. 모든 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사로운 감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감성정치는 막 시작된 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있어왔던 것이다. 그저 시대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나, 인지하지 못했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대인은 더 이상 냉소의 바지자락을 잡고 있지 않다. 리얼하고 필링으로 통하는 무언가와 터치를 하고 싶을 뿐이다. ! 감성정치 르네상스.

* 이 글은 어제 마감된 <GQ KOREA CRITIC AWARD 2008 >에 공모한
대중문화비평입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전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08/11/04 09:30 2008/11/04 09:30

그 남자의 책 (上)

자신을 드러내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손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있는데, 손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타고난 손도 있지만, 만들어진 손이 그 사람이 지나온 날을 어느 정도 시각화 visualization한 달까. 잘은 몰라도 스물이 지나면 스스로 얼굴을 만들어나간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책 선물을 받게 될 때도 유사한 경험을 한다. 잘 아는 이건 모르는 이건,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 주는 이의 안목을 암암리에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감성이 풍부했던 한 영문학도는 유학을 떠나기 전, 정현종 전집을 선물했고, 1-man-company를 경영하던 한 지인은 자신 있게 공병호의 신간을 쥐어줬다. 집 앞 마당의 잡초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들과 그들이 권하는 책 가운데에서 일종의 상관관계를 찾아본다는 게, 비단 황당한 주장은 아니지 않을까.  

 

지난 4년 동안 만났던 가장 매력적인 남자()들이 권한 책들은 하나 같이 그들의 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들의 재능을 부러워했고 존경했으며 또한 두려워했던 시절.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 책들은 번뜩이는 매의 눈동자와 같은 모양으로 내 감성의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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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이충걸 지음,
디자인 하우스
2002



이충걸 (GQ KOREA 편집장)

 모든 것은 우연으로부터 시작했다. 선선한 가을날 친구 하나가 읽어보라고 건네 준 GQ 안에는 난생 처음 접해보는 괴기스런 문체가 버젓이 ‘Editor’s Letter’ 전면을 메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건대, 한 번 읽어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판독이 불가한 수준이었다. 60피스짜리 퍼즐을 겨우 맞추기 시작한 아이한테 난데없이 30,000피스 퍼즐을 퍼부은 격이랄까. 수능 때는 존재치도 않았던 학구열과 승부욕이 마른 풀에 불 붙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그의 이름 탓도 있다. 이름이 그 정도면 사람이 무난하진 않을 거란 쌈마이식 추측이 뒤따랐었다.) 무작정 그이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겁 없는 편지(인턴십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와 되도 않는 글 몇 개를 첨부해 부쳤다. 생각지도 않은 연락을 받고, 덩달아 문체만큼이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말투와 덤으로 상견례를 했다. (그는 외계적 비유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이 사람이 나의 가능성을 본 게야라는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않는 기대감을 안고 (지금은 이전했지만) 동대문 두산 타워 사십 몇 층인가에 위치한 까페로 향했지만, 헛스윙. 가볍게 바람을 맞고 (그는 물론 덤덤하게 사과했다)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고고하니 다리를 꼬고 있던 한 분의 마리 앙뚜아네뜨를 알현했다. 그 날 만나 나누었던 충격 60은 장편소설로 늘여 써도 충분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미안한 마음에 선물을 준비했다는 그가 꺼내든 것은 지큐 일년 정기 구독권런칭 3주년 기념 사진집도 아닌 자신의 책이었다. 친히 싸인과 사과의 메시지가 담긴 이 책을 받아 들고는 한참을 멍 때렸던기억이 난다. 그는 끝..멋졌다’. 적잖은 이충걸 마니아들은 섭렵했을 책이지만, 일년에 평균 3.5권의 책을 읽는 일반인들에게는 자다가 치는 봉창보다도 더 낯설 책일 줄로 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때 그를 오해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책을 선물했던 그의 제스처가 상당히 귀엽게 느껴진다. 결단코 자신의 책에 자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자라나는 꿈나무에게 힘내라고 토닥거리는 간접적인 격려였달까. (그 이후 만났던 보그 편집장은 그가 그렇게 친절한 이가 아니라고했지만.) 최근 GQ에서 본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뿔테 안경테에 스트라이프 셔츠, 루즈한 진에 적당한 스타일링의 헤어하며. 자신의 적잖은 나이를 영원히 흑백 사진 안에 봉인해 버린 것 같은 인상의 남자. 생각보다 주변에 이충걸을 직간접적으로 아는 이들이 많았고, 그들을 통해 들은 온갖 루머의 진상은 두바이의 하얀 모래알 수만큼이나 아련해졌다. 두산 BU에 입사하지 않는 한 그와 재회할 일은 요원하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요즘 GQ가 시들해졌다고 투덜거리긴 하지만) 그가 빳빳한 무솔리니처럼 군림하는 한, 내 심장의 엣지는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을 테니 말이다. Thank you, Mr. Lee.  

 

_다음에 계속 됩니다.

2008/08/03 22:36 2008/08/03 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