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 아트 포스터 공모전

우연한 기회에 전시를 보고 그에 대한 감상을 표현했던 'The Dark-made'가 운 좋게 당선되었다. DID 전시는 기획사의 사정상 지속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11일(목)부터 해당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전시가 된다. (디자인네트에도 수록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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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생성한 질서는 강압적이지 않았다. 순간의 정적 뒤에 찾아온
평안은 낯설지만 친절했다. 내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손의 신호는 먼 끝 섬의 메아리처럼 아득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소리의 근원을 향해 나는 한 걸음씩 발을 떼어내고 있었다. 무딘
줄만 알았던 손가락 끝의 감각이 잘 갈려진 칼날처럼 번뜩였다. 물을 한 번 만져보세요. 어떻게 흐르나요. 졸졸 흐르죠? 이건요? 바닥에 이건 뭘까요? 네, 타일
맞아요. 어떤 모양일지 알겠어요? 물결모양, 바로 그래요. 끊임없이 주고 받았던 대화 가운데 내가 방금 전까지
생생히 눈으로 확인했던 이미지들이 다른 형태로 형상화되는 과정. 선반의 물건을 집을 때도, 삐죽이 나온 잡초를 뽑을 때도, 사랑하는 이의 눈가를 어루만질 때도
모든 것은 ‘시각’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물론 내 눈으로 먼저 인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냄새로 촉감으로 소리로 맛으로 그리고 그 외의 ‘느낌’으로 세상을 그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보지 못하고 태어났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만약에, 만약에 말이에요. 쭉 볼 수 있었다가 갑자기 볼 수 없게 된다면 그 느낌은 어떨까요? 시력을
잃기 전까지 알고 있던 이미지들을 다른 감각을 이용해 발견하면서 기억해내려고 애쓰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중에 그 기억조차 흐릿해지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끝인 걸까요? 조심스레 내딛던 발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미지에
대한 상상이 마침표를 찍는 지점. 나는 과연 어떻게 할까. 그땐
아마 ‘시각 너머의 시각’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게 존재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각’ 또는 ‘보는 것’에 집착하면서
그것이 중요했던 만큼 쉽게 덧없는 가치로 전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미지’란 비단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를 넘어서서 다른 감각으로 전이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왜 미처 몰랐을까. 그 어느 때보다 손과 발을 많이 사용하면서 그를
통해 일종의 날개를 얻은 기분이었다. 어지럽게 찍힌 손과 발의 더듬거림. 알 수 없는 문자 같기도 흐릿한 새의 모양 같기도 했다. 아, 자유롭구나. 이젠 어둠 속에서도 자유롭구나. 나는 훨훨 날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나는 오늘 여러 번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바닥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왼쪽에 놓인 식물의 잎사귀는 어떤 매끌매끌한지, 찻잔에는 손잡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기를 여러 번. 안전한 곳인지 또는 그렇지 못한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손바닥을 탁탁거렸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곳. 눈을 뜨나 감으나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휘감은 곳. 끊임없는 하울링으로 순간적 공감각을 잃은 곳. 1시간이 20분으로 둔갑한 새로운 시간의 개념이 형성된 곳.
바로 <어둠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였다.
출처: http://blog.naver.com/ximon1
60분 남짓 어둠 속의 세상살이를 흉내내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길고도 짧은 시공간을 지나니 ‘당연시 되어왔던 것’에 대한 허울은 한 꺼풀 벗겨내기에 충분했다. 현재의 시스템은 ‘비장애인=정상인’이란 도식아래 독재적이라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일괄적으로 정교히 설계되어있고, 그 ‘다수의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에 동승할 수 없도록 경계가 쳐져 있다. 엄호되는 바운더리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 숨이라도 내쉬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짧은 경험을 가지고 온갖 호들갑을 떠는 자신에 대해 값싼 동정이라도 선물해야 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온갖 모순이 존재의 성을 둘러싸고 어지럽혀도 담담히 안의 광경을 들여다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둠속의 대화>가 비단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한 새로운 대화법만을 뜻하지는 않음을, 오감을 넘어서는 존재에 대한 경이, 그리고 그 어둡기에 찬란한 상상의 세계에 대한 찬미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본다’는 행위에 대해 진지한 재고를 감행할 때다. 경험하지 않은 자, 느끼지 못하는 자, 그대는 입을 열 자격이 없다. 그리고 그대에게 ‘생의 불확실성’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으리라. ‘어둠’도 ‘대화’도 그를 ‘진정으로 아는’ 이들의 전유물이니, 그대 부끄러운 볼을 여미고 떠나라. ‘오만과 편견’이라는 네버엔딩의 세계로.
앗 '사도'가 상을 받았군요. 축하드려요. ^^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냥 재미로 하자는 마음에.
다음엔 사도에게 힘을 더 실어줘야겠어요. (크득)
아무튼 감사드려용 ^^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