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막단상

다분히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 희수(전도연 분)도 병운(하정우 분)도. 특히 병운이란 인물에 대한 묘사는 주변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초긍정의 캐릭터’여서 한층 공감이 갔다. 여기저기 얻어터져도 (전혀 열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하면서 극도로 체화된 ‘화해의 기술’ 또는 ‘이해의 기술’을 몸소 실천하는 이, 병운. 혹자의 눈에는, 아니 그런 그를 한때 (어쩌면) 열렬히도 사랑했던 희수의 눈에는 그런 그가 속도 (배알도) 없어 보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지만, 병운은 그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문법을 터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 정혜>를 통해 이윤기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 나른한 호흡에 동승할 수 없어 괴로웠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멋진 하루>로 이어지는 그의 연출법에 ‘와아’하고 탄성을 내지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밀함에 대한 밀도에는 진심 어린 경의를 보낸다. 영화를 보며 조금은 쓸데없는 샷들이 많이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로케이션 헌팅은 참 열심히 했단 생각도 들었고, 전도연의 스모키아이가 꽤나 어울린다는 이런 저런 잡생각을 했다. 간간히 나오는 노래도 괜찮았고, 특히 타이틀 나오기 전까지의 부분 편집이 딱이었고. 그래도 좀 더 ‘거리두기’를 했더라면 여느 일본소설들같이 무미건조하면서도 무채색의 향(이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을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식 같은 영화를 그렇게 ‘뗐다 붙였다’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걸 감안하면, 뭐. 한 친구의 말마따나 ‘남에게 강추하긴 어렵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가을영화가 되겠단 생각은, 한다. 보세요들-

수년 전에 <보그 탤런트 콘테스트>(일종의 글쟁이 뽑기였는데,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난 것 같아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편집장님, 어떻게 좀 기사회생 시켜주시든가,)의 지원 조건은 ‘자기소개서’, ‘문화비평’,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영향을 끼친 인물 인터뷰’등 세 가지의 글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일전에 소개했던 ‘소설가 김영하 인터뷰’가 제출했던 세 글 중에 가장 높이 평가를 받아 당선이 되었지만, ‘여행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했던 문화비평도 마음 속 한 구석에 아쉬움 아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줄여 말하자면,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여행은 이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골자로 하고 있는 에세이였는데, 아마도 조금 더 섹시한 제안을 하지 못했던 게 패배(?)의 이유였던 듯. 갑작스레 이제 와서 다시 ‘여행의 종말’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갑자기 부친께서 “내년 가족 모두 하던 일을 올 스톱하고 일년 동안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제안을 하시는 바람에 ‘여행’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하아. 누구나 꿈꾸던 바가 아닌가. 세계여행이라. 남들 펀드에 혈안이 될 때, 여행이나 가자는, 참으로도 ‘한량 같기도, 로맨티스트 같기도, 부르주아 같기도’한 아이디어에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네, 떠나요’로 응답하지 못했지만, 심정적으로는 모두 다 ‘재밌겠는 걸’을 외쳤으리라. 모친은 다니는 회사 걱정을(휴직을 일년이나 하고 난 다음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남동생은 다닐 회사 걱정을(자신이 ‘천재’라며 빨리 사회에 자신의 재능을 헌신하고 싶다는 지극히 요상한), 그리고 나는, 뭐 일년쯤 휴학이야 백 번이라도 해 줄 수 있지만, 그다지 오래 다닐만한 학교는 아니라는 생각에(교수님들이 아시면 안 되는 지극히 비밀스런) 머뭇거리고 있다. 아마도 ‘일 년’은 너무 심했고, 방학 동안만이던 반 년만이던 (가족 모두 건강할 때)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하며 어쩌면 십 년 후에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동하고, 직접 체험하는 식의 여행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예감이 든다. (쳇.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세기의 마지막 아날로그 세계여행도 역.사.적.인 이벤트가 될는지도.)
#3 부귀영화
귀여운 면이 많은 과 친구와 서울을 오가며 기차 안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와 나의 관심사가 꽤나 비슷하단 사실에 흠칫 놀랐었다. 특별히 괴기스런 부분이 있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적당한 보헤미안 마인드. 새로운 거 찾아 보기 좋아하고, 어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의 우리 둘은 문득 ‘부귀영화’란 단어를 남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문맥 상 보면 이렇다.
나: 어제 공연은 어땠어?
그: 뭐, 달랑달랑하게 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러나.’
나: 어머머. 나도 알아. 딱 그 느낌. 진짜 이게 왠 생난리인가 싶고.
그다지 적합한 단어선택은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의미상으로는 그보다 나은 표현이 없겠다 싶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에휴. 기다렸던 공연이나 소개팅이나 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다. 물론 전자는 ‘결국 보는 게 나았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결국 안 보는 게 나았다’는 의미지만 말이다.
#4 프로젝트로의 탈출
두 가지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 하나는 기획이 더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자로서 참여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난 주에 한 ‘여장부 교수님’이 ‘앞으로 뭐할 거냐’는 다분히 답 안 나오는 질문을 갑작스레 하시길래, “다방면에 능통한 프로듀서가 되려구요.”라는 한 편으로 보면 마음에 있고,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무슨 헛소린가 싶은’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뭐, 요즘엔 장기적인 계획은 다 필요 없고, 단기적인 실천만이 살 길이라는 식으로 살고 있어 그런지, 일단 눈 앞에 닥친 놈들부터 해결하다 보면 뭔가 보이겠지 싶다. <M>의 안개는 도처에 깔려있다. 그걸 더 옅게도 짙게도 할 수 있는 재미난 세계로의 입문.
#5 서른의 연애
서른을 다른 단어로 대치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단호하게 ‘무기력’을 내세우겠다. 일찌감치 정신 차리고 어엿한 사회의 역군으로서 기능하는 나의 친애하는 동년배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서른은 일종의 ‘오춘기’에 접어드는 요상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십 대 초반에 전 생애를 걸쳐 할 고민을 다 해버려서 인지 되려 요즘은 단순하고 명료한데, 주변인들은 영 그렇지 못한가 보다. 쿨이고 시니컬이고 대부분의 한국작가들이 싫어하면서도 차용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멘털리티는 도처에 깔려있기에, 그것도 깊숙이 드리워져 있기에 함부로 제거하거나 터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고체계가(어쩌면 생활태도가) 연애라는 필드에도 여지없이 발휘되다 보니, 외롭기는 한데 누군가를 옆에 두기는 좀 귀찮고,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 식의 냉랭한 기운이 지배적이다. 뭔가 ‘열정 따윈 잊은 게냐’고 따지고도 싶지만, 그럴 기력으로 다른 거나 하는 게 낫겠다 싶은 ‘또 다른 무기력’이 작동한다. 참나. 여러모로 피곤한 나이다.
#6 문화는 네게 있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도 약발이 다 된듯한 마당에 문화가 중요하단 타령을 하는 게 웃겨 보이기도 하지만, 명색이 ‘문화’란 글자를 앞에 달고 있는 학교에 몸을 담고 있자니 (필연적으로) 문화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AT(아트테크놀로지) 심포지엄에도 다녀왔지만 서도 학제 간 연구, 그 가운데서도 문화 또는 예술과 기술 또는 과학과의 접목은 (비단 정부주도의 미래사업이어서가 아니라) 실로 중요한 화두로 점쳐지고 있다. 물론 CT(컬쳐테크놀로지)가 기술 베이스로 문화를 받아들이고, AT가 예술을 베이스로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개념적 또는 이론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체념적 비판을 해보자면 이렇다. 문화든 예술이든 오늘의 삶에 있어, 나아가 미래의 인류에게 있어 이가 중요하고 그와 기술(과학)이 상관관계를 맺는 과정을 살펴보고, 이차적인 합성효과(시너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를 교육하고 독려하는 과정에 있어서 비단 ‘새로운 트렌드 섭렵하기’와 ‘새로운 창조물 보여주기’식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이란, 특히 이와 같은 실효적/미래적 학문에 대한 교육이란 ‘정부 산하 사업이란 파이의 부스러기 많이 줍기’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전적인 개방과 자유롭다 못해 무질서해 보이기까지 한 전방위적 교류(소통)을 통해서만 미래적 코드를 조금씩이나 이해하고, 그를 넘어선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문화는 네게 있어 무엇인가. 너무나 원론적이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AT던 CT던 순수엔지니어, 순수아티스트의 영역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그 둘간의 영역을 이어주는 ‘멀티가교’로서 기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던가. Early Adapter만은 부족하다. 다져진 식견으로 맥을 짚어 낼 줄 아는 In depth Visionary가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