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암컷
조금 격한 표현이지만, 정치적 암컷은 (원래는) 섹시하다. 욕망과 야망은 수컷의 전유물인줄로만 알았겠지만, 실상 역사적 야화를 잘 살펴보면 칼을 휘두른 건 남자지만 그 칼자루를 쥐어준 건 여자였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미모로 때로는 두뇌로 공략하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그를 가르는 야성은 동색이었으리라.
아직도 안보리에는 우중충한 남성 수트들만이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만, 안방극장은 ‘무서운 언니’들에게 저당 잡힌 지 오래다. 그래. 재미없는 일들은 남자들에게 맡겨! 우리는 ‘진짜’를 휘어잡을 테니깐! (꺄르르르) 뭐, 순간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한참 동안 숨겨왔던 암컷의 속내를 드러낼 때가 왔나 보다. 정치여, 기다려라.
SBS ≪시티홀≫
대표 미중년으로 떠오른 차승원과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김선아가 만나 티격태격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한 평범한 하급공무원이 소도시의 시장이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온갖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정치판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관철해나가는 우직한
여성 리더의 모습은 그다지 미약해 보이지 않는다. 늘 독립적인 성향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기우 때문인지) 막강한 남성조력자를
옆에 두기 마련이라, 때로 여주인공의 독립심이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에서는 좌충우돌하던 여성 캐릭터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강해져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남성조력자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혹자는 ‘강한
것은 옳은 것을 이긴다’고 하였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는
법인가 보다. (보너스로 차승원의 매력을 훑어보는 만화만평)

MBC ≪선덕여왕≫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는 슬로건을 걸고 50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인 MBC의 야심작. 아직까지는 아역에 비중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탄탄한 긴장관계를 이끌어가고 있음이 눈에 띤다. 최근 한 신문 칼럼에서는 선덕여왕과 미실의 리더십을
비교분석하기도 할 만큼(기사보기) 사극 속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아직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선덕여왕은 곧 인재를 중용하는 용인술을 발휘하는
등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남다른 친화력을 겸비한 리더로 부상할 예정이다. 특히 미실의 경우는 유명한 팜므파탈로
악인화되었지만, 그만의 정치력은 선과 악의 잣대를 벗어나 주목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NBC ≪Parks and Recreation≫
유명 쇼 프로그램인 ≪Saturday Night Live≫의 대표명사였던 Amy Poehler를 앞세워 ≪The Office≫의 제작진이 내놓은
야심작이다. 언뜻 보면 ≪The Office≫와 유사한 카메라
워킹이나 드라이한 유머로 단순히 스핀-오프 판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갈수록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잡아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부처의
행정과 관료주의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매 상황과 대사가 함축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감상의 재미가 두 배로 늘 것이다. 동명의 정부부처의 Leslie Knope라는 혈기왕성한 여공무원을 둘러싼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Leslie는 힐러리나 페일린과 같은 여장부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물론
모든 상황은 시청자의 웃음으로 회색 칠 되지만 말이다.
Showtime ≪Nurse Jackie≫
≪Nurse Jackie≫는 ≪House M.D≫나 ≪Six feet under≫ 또는 ≪Californication≫와 같은 블랙유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해 줄만한 작품이다. 간호사 수 십 년의 베테랑 간호사가 겪는 병원에서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이지만, 무미건조한 미국의 일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면도칼을 목에 댈 때마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그 사이의 간극을 급박하게 느끼는 곳이 바로 병원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지나치게 법정물과 병원드라마를 편애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삶이 천국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적나라한 시공간도 없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재키가 얼마나 더 ‘X같은’ 순간들과 마주하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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