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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4  안경 – 삶에 대한 조망 (2)

안경 – 삶에 대한 조망


난 알고 있다, 자유가 무엇인지를: Mir ist bewusst, was Freiheit bedeu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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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가미 나오코의 두 번째 영화 <안경>은 중반부쯤 한 인물의 입을 통해 자유에 대한 꽤나 그럴싸한 몇 마디를 읊조린다. (그것도 독일어로) 남자의 독백이 흐르는 가운데 에메랄드 빛으로 가득한 바다와 바닷물의 끄트머리에 잔잔히 부서지는 하얀 파도, 그리고 그와 눈부신 띠를 만드는 고운 모래. 해변가에 한가로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인물들 위로 카메라는 유영하고, 남자는 말한다. 난 알고 있다, 자유가 무엇인지를. 난 알고 있다.


자유박탈 + 여유결핍

 

참 이상할 노릇이다. 오늘의 우리는(적어도 내전이 일어나는 지구촌 몇몇을 제외하고서는) 자유가 박탈된 적이 없었다. 외형적으로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자유가 있었는지도 까마득하고, 아니면 원래 자유라는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홀연히 사라진 건지 가물가물하다. 여유라는 녀석도 마찬가지다. (같은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우리는 레저라는 이름으로 여유를 포장하고, 보기 좋게 진열하여 얼마에 드릴 테니 이번 기회 놓치지 마세요하면서 끊임없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 무형적인 뭔가를 판다는 것은 사천만의 봉이 김선달을 복제해낸 것과 맞먹는 충격을 주곤 한다. (아니 어떻게 내 인생을 가 책임지며, 아니 어떻게 내 행복을 가 파는 것인가.) 어떤 가치가 포화된 상태는 그것이 부재할 때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일까. 곁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비가시적인 무언가를 찾아서 떠난다는 게 무슨 소용이며, 그게 찾아진다고 찾아지는 것일까. 이내 자포자기하며 자리에 누워버린다. 에라이, 모르겠다. 알게 뭐람. 그깟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어쩔 줄 몰라,

 

너나 할 것 없이 흔히 발견되는 현대인의 증상은 바로 어쩔 줄 몰라,’()이다. 처음 만난 이들끼리는 물론이거니와 수 십 년을 맞대고 살아온 가족 간에도 밥상을 마주할 무렵 어쩔 줄 몰라하는 경우가 적잖다. 젓가락질 몇 번에 먼산은 열 댓 번 쳐다보는 식이라면 설명이 쉬우려나. 대화의 부재, 소통의 부재가 문제라지만, 정작 더 문제는 어쩔 줄 몰라’()이 심각해져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순도 100퍼센트의 사족(蛇足)’이다. 한 마디로 필요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껴주는 특별사은품같은 존재라는 거다. ,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 하루에 꼭 필요한 말은 과연 몇 개나 될까.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가. 관심이 있어서인가, 진심이었나, 그냥 무뚝뚝한 순간을 대체해보려는 수단이었나, 팔을 비비 꼬는 민망함을 모면하기 위한 술수였나. 그 많은 말을 왜 했을까. 그 많은 행동을 왜 했을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알고 보면은. . 결국 어쩔 줄 몰랐기 때문이다.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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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에 대한 면죄부

 

영화 속 한적한 하마다 여관을 찾은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 분) 또한 처음 섬마을 사람들의 사색에 적잖이 당황한다. 사색이라, 사색이라니. 애초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지구 같은 거 없어져버렸으면했던 그녀의 마음도 하마다 여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저 휴대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팠다는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낯섦, 그 자체였다. 상상컨대 그녀 또한 (우리처럼) 쉴새 없이 진동이 울려대고, 하루에도 수십 건의 스팸 메일을 삭제하고, 필요하건 불필요하건 사람들과 부딪히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무언가를 구입하고. 소비의 연속 가운데 정작 가장 빨리 소모되는 것은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 채, 모든 것을 대도시의 리듬에 맡겨버렸으리라. 그런 생활을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반복하면서 갑작스레 맞이한 휴식 가운데 주어진 시간이라니! 무릎이 한껏 튀어나온 트레이닝 복을 입고, 집 앞 슈퍼에서 첫사랑과 우연히 조우했을 때보다 백만 배쯤 더 어쩔 줄 몰랐으리라. 그렇게 당황한 그녀를  하마다 여관은, 영화는 보채지 않고 느긋이 기다려준다. 그녀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관객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그래서 사색이 하릴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잉여활동의 일부로 폄하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뭐라던 간에 존재가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는 한 뼘 남짓한 시공간을 선사하는 둘도 없는 선물임을 깨우친다. 그렇게 <안경>사색이 담배 한 가치 물면 자동으로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님을, ‘여유가 홈쇼핑 채널의 패키지 상품으로 구입할 수 없는 것임을 찬찬히 훑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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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기

 

정작 동명의 까페에 가면 그다지 느리게 걷는다는 느낌이 나질 않는다. 소비가 소비를 소비하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찾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대신 이것을 상상해 보라. (영화에서 힌트를 얻었으니, 영화를 일단 보()는 게 도움이 될 듯.) 일체의 기기를 버리고 적막가운데 처하라. 그곳이 자연과 근접해 있는 곳일수록 좋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잠시 어딘가로 치워둬라. 필요한 건 자신의 몸뚱이와 정신, 그거면 족하다.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정하라. (처음엔 여기저기로 시선이 쏠리겠지만) 한 군데를 응시하고 마냥 고정하라. 그리고 지겨워질 때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라. 그 가운데 누군가를 떠올린다 던지, 지나간 사건과 시간을 되짚어본다 던지, 일어날 일 혹은 하고자 하는 일을 상상해 보는 것도, 아니면 영 엉뚱한 무언가에 대해서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사라졌던 감각이 되살아날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매일 먹는 밥알에도 색깔이 있고, 향취가 있으며, 고유의 맛은 물론이거니와 일종의 여운까지 남김이 새삼스레 느껴질 것이다.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지럽게 정신을 수 놓았던 망상들이 하루아침에 말끔히 정리되었음에 안도할 것이다. 느리게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별 게 아니다. 그리고 별 게 아니라고 여기는 만큼 하찮게 치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시류에 동승하지 않는다는 인상에 나만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주조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느리게 걷기를 거부해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함을, 더 늦기 전에 알아채야() 한다.

 

영화 <안경>을 보면서 주말농장에나 가봐야겠군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삶에 대한 조망이라는 것은 인위적인 요소들을 한 곳에 진열해 놓는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숨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하루가 걸릴지, 평생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아련하기에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 준비 되었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안경을 벗고, 나만의 안경을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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