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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1  지휘자의 등

지휘자의 등


지휘자의 등에도 표정이 있다. 곡을 좇아가기에 급급한 등, 단원의 디테일을 놓치는 등, 지휘봉에 휘둘리는 등처럼 신기하게도 지휘자의 등에는 표정이 있다. 정명훈의 등에는 거대한 지도가 보인다. 검은 색 수트 밑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의 봉우리와 그 사이의 질곡을 휘감아 도는 악상의 늪. 관객의 눈에 힐끔힐끔 비치는 얼굴의 주름 깊이 지독한 날들의 끝없는 고민이 번뜩이는 것 같아 서늘한 기운이 돈다. 작지만 밝은 할로겐 등 아래 너덜거리는 악보를 잡고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 트럼펫 솔로 나지막이 들어가고 점점 크레센도, 첼로 들어오고 그 뒤를 잇는 더블베이스, 탕탕-둥둥, 그리고 잠시 정적. , -하고 시작. 그의 머리 속은 이미 전쟁 중. 음과 리듬이 엉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자리를 찾는다. 또렷하기만 한 혼과는 달리, 육의 안구는 꺼풀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잠시 고개를 파묻고 일어나니 동 틀 무렵. , 또 이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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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매해 이맘때쯤 열리는 APO(Asia Philharmonic Orchestra)의 공연이 지난 7 30일 저녁 8,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다. 지난 해에도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를 보여준 지안 왕(첼로)과 일본 차세대 주자 다이신 카지모토(바이올린), 그리고 정명훈(피아노/지휘)과의 베토벤 삼중 협주곡 협연은 (복잡다다한 관계를 넘어서는) 한중일의 특별한 음악적 만남을 선사했다. (특히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번갈아 가던 마에스트로의 모습이란!!!) 언젠가 정명훈은 지휘자가 되어서 좋았던 점으로 더 이상 피아노를 직업적으로 치지 않아서 좋다라고 했다. 그 때문일까. 지난 해 바르톨리 독창회 때에 이어 이번에도 줄곧 여유 있는 연주를 보여주어 진정한 대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에 연주된 말러 교향곡 5번은 장장 70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오케스트라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다. 특히 관 파트의 선전으로 말러 다운 말러를 만날 수 있었던 멋진 연주였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관은 예전부터 말이 많았다.) 현의 진중한 스케일을 한껏 감상할 수 있었던(일전에도 오디오 북으로 소개한 적이 있는) 4악장 아다지에토 또한 이번 연주의 백미였다. 정명훈의 서울 시향과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의 연주에 가기에 매번이 애틋하다. 진중함을 담은 마에스트로의 등과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으며.    

2008/08/01 11:26 2008/08/01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