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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7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의 실체는 대부분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예상이 빗나가 스스로 혼란을 야기했든, 상대와의 불신으로 인해 변수가 생성되었던 간에 말이다. 두려움은 철저히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 혹은 객체와의 관계설정에 달려있다. 그에 따라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인 두려움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두려움이 있다. 자신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비치기까지 하는 존재(?)로부터의 공격. 그리고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개인. 그들의 반응. 그들의 이후의 문제’.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모든 것은 무방비다. 나이트 M. 샤말란의 신작 <해프닝>은 그렇게 모든 의문을 향해 관객을 무방비로노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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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개봉을 하자 마자 차선책으로 선택했던 이 영화를 앞에 두고 동행들에게 했던 질문은 단 하나. “무서워?”였다. 함께 한 영화학도 하나는 아냐. 심리극일꺼야.”라고 단호히 말했고, 그의 말에 현혹되었던 (나를 포함한) 다른 무리들은 설마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부터 충격적인 장면들을 내뱉던 <해프닝>은 정말 제목 그대로 해프닝의 연속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려는 인상을 주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물론 샤말란의 여느 포스트 식스센스작품군과 비슷하게 말이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팝콘을 집어 던지는 관객들 사이로 들리는 외마디. “아이씨, 어쩌라고.” 적어도 당시에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말이다.   

 

에피소드 2.

학기 중 서울에 대한 향수를 앓다 무작정 씨네큐브를 향해 갔던 적이 있었다. 때마침 극장가를 들끓게 했던(비록 소규모였지만) 코엔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상영 중이었다. 앞 줄에 앉으신 뽕머리아주머니의 방해전략을 뚫고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그 영화가 2/3 지점에 왔을 때, 이야기를 이끌어가던(적어도 그런 척을 했던) 주인공이 하고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 돌연사(!)에 관객으로서 두 가지의 두려움을 느꼈다. 믿고 의지했던 플롯의 축이 화자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화자와 대적했던 안티-프로타고니스트의 존재가 무의미해짐에 대한 두려움. 어쨌든 관객으로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영화는 관객의 패닉을 방관하진 않았다.)

 

에피소드 3.

이번 주 필름 2.0’은 샤말란의 <해프닝>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다양한 평론가에 의해 여러 시각으로 같은 영화를 보게 한 이번 기획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평론에 따르면 미국 공포영화는 ‘9.11’을 전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미국인들이 그를 통해 겪은 생생한 체험이 영화(특히 공포영화)를 통해 징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샤말란 감독 또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해프닝>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인간이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을 때, 바로 그 순간을 캡쳐해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이 가지는 충격의 강도와 곧바로 이어 생길 두려움 간의 상관관계. 충격-두려움 공식에 대한 가감 없는 기록인 셈이다. 물론 샤말란이 <해프닝>을 통해 미국이 겪어야 했던 테러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리고 실제적 증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팠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영화에 보여지는 것처럼,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바로 우리의 눈 앞에서 펼쳐질 수 있음에 대한 가능성, 그리고 그 다음에 인간이 어떠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는 지에 대한 탐구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물론 앞의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듯, 공포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습관적인 기대심리는 음모가 밝혀지는 등의 사건해결의 면모일 것이다. 그러나 <해프닝>은 이러한 공포영화의 문법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낯선 경험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보는 당시의 충격이상으로 보이지 않은 충격을 선사한다. 왜냐하면 쇼킹한 장면의 이면에 숨은 실체를 이성적으로 되짚어보고자 노력하지만, 그 상이 모호할 뿐 (이성적으로는) 그 어떤 논리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감각적이다. 논리적 수사나 이성적 방어도 속수무책이다. 그저 감지할 뿐, 어떻게도 대처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오늘의 사회를 매우 닮았다. 혼란에 익숙해져 있고, 불분명한 명제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에게 너무나 친근하면서도 그렇기에 두려운바로 그런 속성이다. 그게 나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다.


2008/06/27 17:26 2008/06/27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