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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보 두다멜'에 해당하는 글들

  1. 2008/12/23  Being Young in different ways
  2. 2008/08/28  리듬 타는 책임감

Being Young in different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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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YT


구스타보 두다멜 &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지금부터 딱 열흘 전이었다. 여러 클래식 잡지나 신문, CD가판대, 유튜브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자자한 명성을 확인했던 것이 말이다. 서른도 안된 나이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차세대 지휘자들 중 하나 구스타보 두다멜과 그를 배출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의 자랑,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귀한) 방한을 했다.

이틀 간의 공연 중 14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공연은 그들의 주 레파토리인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말러의 교향곡 제1번 이었다. 너무도 대조적인(!)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는 두 선곡을 통해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두 곡 다 대형오케스트라에 어울릴 만한 곡이라는 점 외에는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작곡가와 (세미클래식과의)뮤지컬과 정통 교향곡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곡이라 해도 무방하다. 조금은 긴장한 듯한 두다멜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연주 마지막에는 3-5분 정도 굽힌 몸을 펴지 않은 채, 마지막의 음악적 여운을 한껏 들이마셨다. 활 시위끼리 부딪힐 정도의 역동성과 언뜻 언뜻 웃음지었던 마림바 연주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타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늘상 즐기는 모습으로 무대를 휘젓는 빅뱅의 모습과 유사했다. .. 바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들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조금 더 특별했다.

말러 교향곡 제1번은 말러가 독일의 낭만주의작가 장 파울의 소설 <타이탄>이란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든 일종의 성장소설과도 같은 인상을 남긴다. 슬프고 우울한 정서가 많이 담겨 있지만, 그 와중에서 청춘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그린 이 곡을 진지하고도 공감하는 느낌으로 빚어낸 것이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장점이었다. 비록 개인의 역량은 다른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비해 뒤떨어질 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큰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서 그들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들을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즐길 줄 아는 면모를 풍겼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음악 안에서 찾고자 하는 그들에게 슬픔과 연민보다는 유희와 여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남미 특유의 낙천주의와도 맞닿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깊이 울리는 감동을 선사했다.

그들에게 젊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presence), 그 자체다. 가진 것이 애초에 없었기에 당장 잃을 것이 없다는 현실은 그들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젊다는 것은 자만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눈부시고, 그 스스로 강한 것이다. 그리고 스물 여덟의 지휘자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젊었다. 있는 그대로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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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eart

일전에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가 막을 내리기 전에 가까스로 보았다. (블로그 글 다시보기) 아트선재센터에 위치한 아트홀이 특별히 월요일 조조를 파격적인 가격(삼천원)에 내놓고도 모자라, 관객들에게 영화 시작 전 직접 만든 커피와 머핀을 제공하는 등 감동서비스를 제공하여 매우 훈훈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음을 덧붙인다.

뉴 햄프셔에 사는 7-80대에 놓인 젊은실버세대들이 지난 20여 년 간 꾸려온 합창단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2008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큰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들 신파조의 휴먼다큐멘터리를 상상하기 쉽겠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매우 다이내믹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몇 편의 직접 제작한 뮤직비디오와 공연실황과 동행취재 및 인터뷰로 구성된 <로큰롤 인생>은 지금 우리의 모습, 또는 다가올 우리의 모습을 위트 있는 시선으로 조망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비단 젊다는 것의 반대말이 아니다. ‘젊다는 것도 그저 일정한 시간 축 안에서 임의적으로 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피상적인 말이지만, ‘젊다는 것은 이러한 외형적인 지시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마음으로 젊고자 하고 행동으로 젊음을 발산한다면 그/그녀는 충분히 젊은것이다. 이 영화는 더 나아간 관찰을 남긴다. 이 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시간을 멈추려 하지도 않고,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삶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이고, 그것이 바로 젊음의 유지 비결이라고 속삭여준다.

하나의 공연과 하나의 영화는 너무나도 넓은 연령과 장르, 문화권의 스펙트럼을 선사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동일하다. Being Young에서 Forever Young으로의 이행. 나 혼자만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아 약간은 속상하다.

2008/12/23 17:18 2008/12/23 17:18

리듬 타는 책임감

중세가 금기의 시대였다면 현대는 발설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도 일정한 발설의 선을 넘어서는 잉여의 시대, 과잉의 시대로 보여진다. ‘너무 똑똑하신 나머지 가만히 입 다물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양반들이 사대문 안 이서방 마냥 쫙 깔렸으니, 좀 못 배웠다,싶으면 가만있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그렇게 말이 자유로운 세상에 말이 말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냥 말이 음성적으로 인식되는 소리 이외에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듯하다. 콕 집어 말하자면, 말에 힘이 말에 영향력이 하나도 없다.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단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책임감이 아닐까 한다. 개인의 책임감, 성인의 책임감, 사회의 책임감도 모자라 기업에도 책임감이 생겨났고(적어도 그렇다고 하고) 심지어는 책임을 운운하는 펀드상품까지 등장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자본의 어휘응용력인가!) 결국 책임감이라는 개념의 이와 같은 물()화는 그가 가지는 원래의 무형적 가치를 약화시킨다. ‘책임에 대해 떠들어대는 입은 많아졌어도 그를 실천하는 몸뚱아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흔적을 볼 수 없다. 그야말로 무책임한 사회가 고장 난 레코더마냥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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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최고 스타는 다름 아닌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SBYO)였다. 젊은 지휘자로 주목 받고 있는 구스타보 두다멜(27)이 지휘봉을 잡은 그 날, 평균 연령 20세를 밑도는 젊은 단원들은 바흐와 말러, 그리고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이어지는 레파토리로 관중석을 열광케 했다. 더 믿기 힘든 사실은 이들 모두, 그리고 두다멜 조차도 한 때 거리의 아이들이었다는 점이다. 법학자이자 음악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부레우 박사는 30여 년 전, 베네수엘라의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리면서 온갖 범죄에 휩싸이는 세태를 두고 볼 수 없어 ‘El sistema’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길거리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쥐어주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링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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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시도는 수년 전 겨울 베를린에서도 있었다. 당시 베를린에서 거주하던 25개국에서 온 250여명의 아이들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클래식음악을 들은 적도, 춤을 춰 본적도 없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기만 했던 수많은 이민자 아이들을 데리고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은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한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맞춰 무용공연을 펼친다는 것. 물론 주인공은 250여명의 아이들이었다. 영국 출신의 유명한 안무가 로이스톤 말둠이 수개월간 노력한 결과, 처음엔 시큰둥하기만 했던 아이들의 마음이 가까스로 열리기 시작했고, 결국 너무나도 멋진 무대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리듬 이즈 잇!>은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2004-5년 시즌 다큐멘터리 계를 뜨겁게 달궜다.

 

얼마 전, 뉴저지에 오래 머물다 귀국한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거기 갔더니 우리네 사는 풍경과 확연히 차이 나는 단 한가지가 있더라고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악에 받쳐 살았는지가 느껴지더라며 적당한 자기만족에 안주하며 사는 그네들의 모습이 부러웠다고 했다. 비슷한 말은 김지운 감독의 <숏 컷>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유럽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젊은이들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사슴 같은 눈망울을 지니고 살 수 있냐는 감탄이었다. 논리의 비약이 있지만, 책임의식 또는 책임감이라는 것은 나를 잠시 버리고 나 아닌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 몸뚱아리 하나, 나 하나만 챙긴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최소한의 책임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나아가 나 아닌 다른 사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발전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책임감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앞서 생뚱맞게도 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결국에 우리가 이러한 책임감에 점점 무뎌지는 것은 그에 대한 구호나 강조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대신 그를 체감하는 각자의 정도가 그에 반응할 수 있을 만한 심리적 여유가 없기에 전체적으로 책임이 약화된(결여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물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손길과 특히 사회 언저리를 서성이는 아이들에 대한 자각이 존재한다. 그저 이를 좀 더 강압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테두리 안에서 함께 놀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하나 둘씩 모여들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책임에 대한 공허한 외침의 무한트랙에서 한 발자국 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Trailer of <Rhythm Is It!>



                         SBYO at BBC Proms 2007

2008/08/28 22:54 2008/08/28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