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Young in different ways

출처: NYT
구스타보 두다멜 &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지금부터 딱 열흘 전이었다. 여러 클래식 잡지나 신문, CD가판대, 유튜브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자자한 명성을 확인했던 것이 말이다. 서른도 안된 나이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차세대 지휘자들 중 하나 구스타보 두다멜과 그를 배출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의 자랑,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귀한) 방한을 했다.
이틀 간의 공연 중 14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공연은 그들의 주 레파토리인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말러의 교향곡 제1번 이었다. 너무도 대조적인(!)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는 두 선곡을 통해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두 곡 다 대형오케스트라에 어울릴 만한 곡이라는 점 외에는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작곡가와 (세미클래식과의)뮤지컬과 정통 교향곡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곡이라 해도 무방하다. 조금은 긴장한 듯한 두다멜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연주 마지막에는 3-5분 정도 굽힌 몸을 펴지 않은 채, 마지막의 음악적 여운을 한껏 들이마셨다. 활 시위끼리 부딪힐 정도의 역동성과 언뜻 언뜻 웃음지었던 마림바 연주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타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늘상 즐기는 모습으로 무대를 휘젓는 ‘빅뱅’의 모습과 유사했다. 즐.김. 바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들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조금 더 특별했다.
말러 교향곡 제1번은 말러가 독일의 낭만주의작가 장 파울의 소설 <타이탄>이란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든 일종의 성장소설과도 같은 인상을 남긴다. 슬프고 우울한 정서가 많이 담겨 있지만, 그 와중에서 청춘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그린 이 곡을 진지하고도 공감하는 느낌으로 빚어낸 것이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장점이었다. 비록 개인의 역량은 다른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비해 뒤떨어질 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큰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서 그들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들을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즐길 줄 아는 면모를 풍겼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음악 안에서 찾고자 하는 그들에게 슬픔과 연민보다는 유희와 여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남미 특유의 낙천주의와도 맞닿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깊이 울리는 감동을 선사했다.
그들에게 젊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presence), 그 자체다. 가진 것이 애초에 없었기에 당장 잃을 것이 없다는 현실은 그들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젊다는 것은 자만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눈부시고, 그 스스로 강한 것이다. 그리고 스물 여덟의 지휘자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젊었다. 있는 그대로 젊었다.

Young@Heart
일전에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가 막을 내리기 전에 가까스로 보았다. (블로그 글 다시보기) 아트선재센터에 위치한 아트홀이 특별히 월요일 조조를 파격적인 가격(삼천원)에 내놓고도 모자라, 관객들에게 영화 시작 전 직접 만든 커피와 머핀을 제공하는 등 ‘감동서비스’를 제공하여 매우 훈훈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음을 덧붙인다.
뉴 햄프셔에 사는 7-80대에 놓인 ‘젊은’ 실버세대들이 지난 20여 년 간 꾸려온 합창단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2008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큰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들 신파조의 휴먼다큐멘터리를 상상하기 쉽겠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매우 다이내믹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몇 편의 직접 제작한 뮤직비디오와 공연실황과 동행취재 및 인터뷰로 구성된 <로큰롤 인생>은 지금 우리의 모습, 또는 다가올 우리의 모습을 위트 있는 시선으로 조망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비단 ‘젊다’는 것의 반대말이 아니다. ‘젊다’는 것도 그저 일정한 시간 축 안에서 임의적으로 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피상적인 말이지만, ‘젊다’는 것은 이러한 외형적인 지시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마음으로 젊고자 하고 행동으로 젊음을 발산한다면 그/그녀는 충분히 ‘젊은’ 것이다. 이 영화는 더 나아간 관찰을 남긴다. 이 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시간을 멈추려 하지도 않고,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삶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이고, 그것이 바로 ‘젊음’의 유지 비결이라고 속삭여준다.
하나의 공연과 하나의 영화는 너무나도 넓은 연령과 장르, 문화권의 스펙트럼을 선사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동일하다. Being Young에서 Forever Young으로의 이행. 나 혼자만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아 약간은 속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