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me Sweet Home

at home_pic by b. kang
위키피디아는 ‘home’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다.
A home is a place of residence or refuge. It is usually a place
in which an individual or a family can rest and be able to store personal
property. Most modern-day households contain sanitary
facilitiesand a means of preparing food.
Animals have their own homes as well, living either in the wild or in a
domesticated environment.
여기에서 보듯 ‘집’이란
머무름과 (자연재해/인명피해로부터)피신해있기 위한 건물로써 뿐 아니라, 내외적 안식과 연명을 위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유목민과 같이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길을 찾아 떠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에게도 우리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집’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십 년 전부터 긴 아파트 생활을 떠나 자연과 접해있는 나지막한 집을 짓기 원하셨고, 건축가로서 그렇게나 많은 집을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 가족을
위한 집’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어떻게 보면 건축가로서
최고의 정점에 서 있는 지점에서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나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집 짓기가 남다른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거리 내에서 (거의) 모든 것이 해결 가능했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근교의 ‘시골 풍경’에 익숙해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음을 이제서야 고백한다. 다행히도(?) 지금보다
길이 훨씬 덜 닦여 있었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던 ‘깡촌기’에는 불량한 유학생 신분으로 집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덕에 ‘전원생활’이 비단 고상함과 우아함으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정착되고 난 다음인 2004년부터 ‘전원생활’에
동참하면서 여름철엔 수많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곤충류와의
사투, 겨울철엔 눈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마당으로 나가 제설작업에 동참함으로 일찌감치 ‘전원주택’에 대한 환상을 접게 되었다. 그래도 적응력이란 게 참 섬뜩한 것이, 여러 불편함도 익숙함이란
이름으로 변하고, 우리 집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특히
무엇보다 날이 갈수록 인간이 얼마나 소음에 민감한 동물인지 깨달으며, 완전한 적막을 선사하는 이 곳을
‘타O팰리스’ 따위와도
바꾸지 않겠노라 결심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집을 한 번 왔다 간 이들은 따뜻한 이미지를 기억해 준다. 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흰 벽의 붉은 지붕, 그리고 원목은 한국적 정서에 조금은 이국적으로 느껴지면서도
특유의 따스함을 지니고 있다. ‘집’은 뭐니뭐니 해도 주변
환경(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그 안에 사는 이들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아버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한층
특별한 이 곳이 타향살이를 하는 누군가에는 자기 집으로 느껴지고, 평생 아파트 살이를 한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살고 싶은 집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렇게 보면 ‘어떤 집에서 사느냐’는
그 안에 사는 이의 인성과 삶의 패턴, 사고 양식까지 지배하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요소이다. 젊은 이들에게 시간이 되면 세계의 여러 곳을 많이 여행해 보라는 주문 이상으로 어떤 환경에서 특히 어떤 주거환경에서
성장하고 생활하느냐가 개인의 삶에 주요하게 작용함을 기억했으면 한다. 작게는 방 안의 분위기를 바꾸는
정도로 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크게 보자면 집을 드나드는 모든 연령층의, 장애유무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이들이 큰 불편을 겪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
볼 수 있다. (지난 80년대부터 일반화되어 왔지만, 한국에는 최근에 들어서야 알려지고 있는 유니버셜 디자인 Universal
Design의 기본정신을 전수하고 있는 건축물이라 봐도 무방하다.) 지난 10년 간은 ‘주상복합’이라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컨셉에 열광하다 최근에는 ‘타운하우스’라는
지역사회친화와는 거리가 먼 컨셉이 메이저 건설회사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는 추세다. 거칠게 말해 ‘집 장사’를 하려고 매번 새로운 주거 모델을 제시하고 있음은 이해하지만, 그들이 매번 광고하는 것처럼 ‘혁신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창출할는지는 미지수다. ‘집’은
역시 ‘집다운’게 좋은 것이지, 주변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형태로 들어서거나 조금씩 고쳐나가면서 역사를 쌓는 대신 무조건 부수었다 새로
짓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최선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그
도시 또는 지역은 허울 좋은 발전을 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자생력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집을 경험한 아이는 커서 자신의 아이에게 또다시 따뜻한 집을 만들어 줄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사는 이들의 온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겠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빚어지는 다양한 에너지를 모으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을
한 번 둘러보기에 알맞은 시점이다. 연말이고, 쉽게 중심을
잃기 쉽다. 내게 집이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다만 오해는 마시라. 줄곧
이야기한 집에 어떤 절대적인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집 값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그 집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하고 사는지에 대한 물음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