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강보라'에 해당하는 글들

  1. 2008/11/02  건축과 사회, 2008 가을
  2. 2008/10/14  [타임뮤지엄] 오디오 북 시리즈 16

건축과 사회, 2008 가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버지는 아직도 손으로 직접 도면을 그리신다. CAD도사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손끝의 감각을 이용해 집의 모양을 그려낸다는 것은 아날로그적이다 못해 무뎌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난 아버지의 도면이 좋다. 수많은 제도샤프와 각가지 모양의 자, 수 십 년은 족히 된 비스듬한 제도책상과 깜빡이는 램프 그리고 번지고 때가 묻은 채 돌돌 말려진 제도용지들. 아버지의 작업실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리곤 했던 딸과 늘 그런 딸을 하염없이 예뻐해 주셨던 아버지가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했던 글 디자인 열변을 우연히 아버지께 보여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건축과 사회」 2008 가을호에 디자인 서울, 디자인 코리아를 슬프게 환영하며라는 실리게 되었다. 원래의 내 글에 아버지가 덧붙여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형식으로 완성된 이 글은 내 입장에서 보자면 한 없이 부끄러운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가슴 한 켠이 터져나갈 정도의 충만함을 선사하는 이벤트로 기억될 것이다. 하하하. 아버지와 딸. 이보다 뭉클한 단어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은 밤이다.

2008/11/02 00:00 2008/11/02 00:00

[타임뮤지엄] 오디오 북 시리즈 16

사용자 삽입 이미지

robert adams, 1974


죽음이란 어쩌면 죽어감을 품은 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고, 죽음이 살아있음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여기지만 종국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예기치 않은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평탄불감증과 마주한다. 현재 상황에 대한 당연함이 그저 우연함에 기댄 것임을, 그래도 살아있어 얼마나 다행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생채기 난 무릎, 부서진 범퍼, 텅텅 빈 잔고를 보며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당연치 않았음을, 감각이 무뎠음을, 그저 다행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빠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늦되다. 우리는 민첩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우둔하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버겁지만, 서서히 삶이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죽음을 안고 죽어가거나, 죽어가며 죽음을 생각하는 건 비단 슬프고 괴로운 일이 아니다. 실체와 맞닥뜨리는 순간은 실로 두렵지만, 그 이후에는 온전한 평안이 찾아온다. 삶이여, 부디 잔잔하라. 그 앞에 모두가 겸허하리니.

죽음과 죽어감, 강보라, 2008


2008/10/14 12:39 2008/10/14 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