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투라 스코프 – ‘디’ 인트로덕션

Borakang.com이란 도메인으로 이 블로그를 운영한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나간다. 시간에 비해 콘텐츠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늘려가며 균형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프리챌 시절부터 <일상의 발견>, 싸이월드 클럽 <일상의 발견 II(일명 Il_II)> 등을 통해 2002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려고 면면히 끄적거렸던 것들이 꽤 많이 모이게 되었다. 웹 상에 여러 가지 형태로 글쓰기를 병행해 가면서 이와 같은 나만의 공간들이 결국에는 나의 많은 영감과 감상들을 나지막이 돌아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해 주었다 고백해 본다. 언젠가는 가상의 독자가 있음에 설레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없음에 섭섭해 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지독히도 개인적이면서도 다수를 위한행위를 반복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블로그를 처음 만들면서 도메인과 다른 제 2의 이름을 부여한 까닭은 언젠가 발행인으로 또는 편집장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잡지가 있다면 이와 같은 이름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쿨투라(cultura)는 예상하다시피 문화(culture)를 라틴어식으로 발음한 것이고, 스코프(scope)는 영단어 뜻 그대로 범위, 영역, 시야등을 뜻한다. 스스로 문화인이라고 붙이기는 민망하지만, 그 주변부를 끊임없이 맴도는 문화애호가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문화를 만들어가는 근원, 그를 향유하는 집단,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작용을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선 반 보 빠른정보와 해석을 선보여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반 보 느린잡문만을 내어 놓는 것 같아 민망할 때가 많다. 그래도 소위 ‘1인 블로거로서 이 정도면 준수하지 않냐는 자평을 해 본다. (미안합니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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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스코프 초창기에 롤모델로 삼은 두 잡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의 뉴요커 The New Yorker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의 차이트 Die Zeit이다. 둘 다 문화권을 대표하는 주간지이면서 다양한 문화현상에 관심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쿨투라 스코프는 뉴요커의 배분 섹션과 똑같은 형태를 취함으로써 구조상의 있어서의 유사점을 본받으려 했다. 또한 차이트뉴요커와는 달리 정치와 경제, 사회 문제 전반에 있어서도 특유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에 착안, 이따금씩 건조하고 딱딱한 이야기들도 다루려고 했다. ‘뉴요커차이트모두 사진보다는 일러스트로 처리하고 있지만, 자체 능력 부족으로 차차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문화예술잡지들이 있지만, 잡지 시장의 규모가 타문화권에 비해 크지 않다는 약점을 극복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낱 헤어샵이나 백화점, 커피전문점 등지에 비치용 스탬프가 찍힌 채로 그 삶을 마감하는 숱한 잡지의 마지막을 목도하며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의 손에 얇지만 (내용적으로)묵직한 잡지를 들려주어, ‘무언가라도 읽는 인구를 하나 둘씩 늘려 가고픈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쿨투라 스코프가 그런 역할을 대신할 날이 언제 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그 날이 그다지 멀지 만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오픈 엔딩을 시시하게 추락시키진 않을 것이다. 나와 한 가닥의 공감 줄기를 나눌 수 있는 이가 한 명이라도 이 우주에 존재한다면, 시작도 끝도 모두 창대하리라 믿는다.
당신의 취향이 멈추는 곳, 당신의 감각이 정지하는 곳. 영역과 시야를 넘나드는 문화허브-cultura scope  

Viewroducer

세상에 존재하는 시각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아마도 존재하는 숫자를 웃돌거나, 최소한 그 정도는 될 것이다. 그만큼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는 게 시각의 장롱이지만, 막상 손에 잡으려고 하면 미끌-하고 갓 빗어진 모짜렐라마냥 빠져나가기 일쑤다.

황지우 선생이 일전에 예술을 저주받은 축복에 빗댄 것처럼, 사람에, 그리고 사물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재능을 가장한 피곤함일는지 모른다. 그냥 지나치고 잠깐만 생각해도 될 것을, 늘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늘 통상보다 더 시간을 들이니 말이다. 그래도 시각이라는 것이 졸졸거리는 시냇물에 다듬고 다듬어진 조약돌의 광채와 같은 거라서 남다른 인내와 통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남루한 노학자의 고견이건, 일일 노동자의 거친 입담이건 모두 그 나름의 넓이와 깊음이 전제되었음을 잊지 않고자 한다.

 

리뷰

혹자는 내게 관심사가 너무 많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진심 어린 충고를 던졌지만,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관심사가 많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은 수학과 음악이 만나고, 철학과 미술이 만나는 것 아니었던가. 그리고 (굳이 장한나와 같은 천재가 아니더라도) 서로 상이하게 다른 영역에서 오버랩 되는 정점을 경험하는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더 이상 하나만으로는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을 한탄하기보단,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지식을 퀼팅하고, 그를 통해 독창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 아닐까 싶다.

리뷰는 (문화적 차원에서) 여러 장르물에 대한 작가 개인의 의견을 담은 글이다. 자주 가치(점수)를 매기기도 하는데,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10년간 클래식, 영화, TV, 문학, 미술과 관련된 주제들을 커버하면서 가장 큰 자산으로 삼았던 것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은 예술가이거나 준예술가, 지망생, 관련업계 종사자 등이었고 그들의 입을 통해 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결과물이 리뷰라는 형태를 띄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차마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래, 그래하며 손바닥을 치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시각을 향한 것이건, 그에 반하는 것이건 상관없이 마주하는 시각들 가운데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즐거이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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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람. 사람에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질 줄 알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습성이 아닐까 합니다.”

한 면접관이 프로듀서로서 적합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을 때 당돌하게도 사람에 대해 주구장창 떠들어댔다. 실제 사람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이야기를 출발한다고 보는 것은 비단 내가 처음 설파한 건 아닐 테다. 많은 예술가들이 타인의 말과 행동, 나아가 타인의 생애를 통해 영감을 얻고, 그에 대해 자신만의 해설을 덧붙여 재해석하기를 즐겨 한다. 역사라는 것 또한 다름아닌 사람의 역사이며 학문이라는 것도 사람의 학문이 아니었던가. 큰 사람이 되려면, 평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도 다 이와 관련된 이리라.

2002년 방송아카데미를 통해 방송기자지망생이란 딱지를 붙이고 멋모르고 마이크를 들이댄 것이 아마도 인터뷰란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아닌가 한다. 이후 영상원에서 인터뷰와 관련한 여러 테크닉을 익히면서 인터뷰라는 것이 감히 한 학기 만에 통달할 수 없는 사차방정식과 같은 존재란 걸 깨닫게 되었다. 영상인터뷰와 달리 지면인터뷰는 또 다른 매력만큼이나 어려움 또한 선사했다. 녹음하기까지의 준비과정도 까다롭지만, 이후의 정리과정이 한층 고된 작업이기에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려웠다. 큐티진에서 수년간 베푼 배려로 가능했던 대담인터뷰에서부터, 20대의 젊은이들만을 선별해서 릴레이 인터뷰를 펼쳤던 ‘20대의 초상그리고 마지막에 연재했던 가상의 인물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가상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터뷰이를 만나는 가운데 초라했던 인터뷰 기술이 조금이나마 진일보함을 느꼈다. 그 외에도 ‘The 1st Vogue Talent Contest’에서 소설가 김영하와의 인터뷰가 낙점되어 팔자에 없는 잡지사에 발을 들여놓는 영광까지 얻게 되어, 인터뷰에 대한 애착이 한층 두터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비단 즐거운 일만은 아니지만, 전혀 다른 이성과 감성의 분자로 이뤄진 구성체가 만나 직접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뤄간다는 것만큼 설레는 작업은 없다. 늘 사십 줄에는 래리 킹이나 오프라 윈프리를 뛰어넘는 토크 쇼한 번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떠벌리면서도 막상 잘 해낼 자신은 없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았으니뛰어보면 못할 것도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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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로듀서 - Catch the VIEW, Meet the VIEW

제목에 이미 언급했듯, View와 인터View를 생산해 나가는 이를 뜻하는 단어로 뷰로듀서Viewroducer란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존의 방송이나 영화, 공연, 출판 분야뿐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기획자 Producer로서의 능력이 요구되는 사회에 살면서 더 많은 이에게 나름의 시각을 전도하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스스로 뷰로듀서 1란 호칭을 부여하고, 앞으로의 여정이 그에 부합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리뷰나 인터뷰와 관련하여 청탁이 있는 분은 아래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e-mail. b-hind@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