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derlands Dans Theater II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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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킬리안 作 'SLEEPLESS'


"내 이름은 다나에요. 엄마는 늘 자유에 대한 노래를 부르곤 했죠. 이렇게 말이에요." 

무대를 가로지르며 일렬로 길게 늘어선 십수명의 무용수들 사이로 빈 공간이 생긴다.
무리에 속해있던 한 무용수만이 행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동작을 자유롭게 선 보인다.  
비교적 작은 체구에 짙은 갈색머리의 여성무용수가 자신의 소개를 담은 모놀로그를 선보인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배경으로 깔리는 그녀의 노래소리는
아릿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비운의 정서. 그러나 그녀는 행복하단다. 춤이 있기에, 움직일 수 있기에 말이다.

17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를 찾은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NDT)는 보기 드문 감각의 향연을 선보였다. 이번 내한 공연을 주도한 NDT II는 특히 만 23세 이하의 무용수들로 이루어진 젊은 그룹이었기에 그 감흥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어제 공연의 프로그램은 총 세 작품으로 나뉘었다. NDT의 현 상임안무가인 지리 킬리안이 직접 안무한 'SLEEPLESS', 전 상임안무가인 한스 반 마넨의 'SIMPLE THINGS' 그리고 촉망받는 젊은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MINUS 16'이 차례로 선보였다. 세 안무가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삼인삼색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NDT II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SLEEPLESS'를 시작으로 역동적이면서도 의도적인 혼란을 가미한듯한 'MINUS 16'으로 끝맺은 가운데 NDT II의 색채가 아스라히 스며들었다.  

네덜란드 특유의 개방성과 자유로움이 무용단 구성원들의 면면을 통해서, 그들의 움직임과 동작의 연속성을 통해서 전해졌다. 미니멀한 무대와 세련된 색감과 질감의 의상, 최소로 최대의 효과를 냈던 조명, 특히 섬세한 손길이 갔을 법한 음악이 한데 어우러졌다.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NDT II의 공연은 '철학, 스타일, 인터랙션'이었다.

철학 - 사유의 종착역

사유함에 있어 종착역이란 고정된 개념이 아닐 것이다. 물론 '종착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끝의 정점'이라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한층 윗선상에서 두고 보자면 '유동적인 끝의 정점'으로 재정의할 수도 있지 않을까. NDT II의 움직임은 피라미드 식의 전개를 통해 추상적인 개념으로부터 비추상적인 메시지로 귀결되는 특징을 안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음악과 무대미술, 의상과 안무가 유기적으로 촘촘히 얽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라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자칫 현대무용에서 관객들이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기에 이러한 유기적 구성은 (과장을 조금 보태) '눈물나도록'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음악 따로 안무 따로 나아가 기량 따로 노는 듯한 무대는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넘실대었던가. 그런 와중에 깊고도 넓은 사유의 종착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솜씨란! 결국 '아는 만큼 보는' 문제인가 보다.

스타일 - 내면의 반사판 

현대무용에서 가장 착각하기 쉬운 점. 특히 젊은 현대무용가라면 더더군다나 범하기 쉬운 점. 바로 스타일의 문제이다. 강조에 강조를 거듭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바로 스타일이 '내면의 반사판'이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외형의 드러냄'을 스타일과 동일시 하기에 무용수나 관객 모두 과잉된 자아의식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매우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NDT II의 공연은 과잉된 자아의식이라는 '거품'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무용수들은 정제되었지만 자유롭고, 깊이가 있으면서도 단순한 맛이 있다. 무용수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NDT II라는 큰 테두리 안에 포용하는 작업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역사는 아닐 것이다. 혼재했던 가능성들로부터 하나의 스타일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그들이 충분히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작업을, 그 지리하도록 긴 인내의 과정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단순한 손놀림 하나로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는 건, 부분과 전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뒤따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겉멋이란 단어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고매한 무언가다.

인터랙션 - 너와의 대화

자고로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 21세기에 화두 '인터랙션'을 빼고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그만큼 잘 '안되고 있다'는걸 증명하기도 한다. 일찌감치 브레히트(A. Brecht)를 통해 관객의 참여와 그들의 시점이 관객석 안에서 무대 안으로 옮겨져 왔지만, 아직도 공연자 중심의 사고가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상호작용을 뜻하는 인터랙션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물리적 교감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한 층 나아가 정서적 합일을 이루는 '너와의 대화'가 가능할 때 인터랙션이라는 예술사의 진화에 한 걸음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NDTII는 마지막 작품 'MINUS 16'을 통해 '너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즉흥적으로 관객석을 침범(!)해 일반인 파트너를 한 명씩 선별한 후 무대위로 초대한 것이다. 자유로운 관객들의 몸동작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역으로 관객이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자신의 리듬을 실어보기도 하면서 경계의 부재를 몸소 구현해내었다. 이것이야말로 고도로 고안된 안무의 형태, 고정성과 즉흥성이 하모니를 이뤄 모두를 어디로 이끌어줄 지 모를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물론 모두들 프로이니 가능한 얘기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노랫가락을 들려주던 낯선 언어의 무용수는 몸으로 울었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눈물 삼키던 육체'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몸의 힘은 강력하다. 그리고 움직임의 힘은 강렬하다. 그 앞에 정신은 나약하기에 오늘도 무릎을 꿇는다.



2008/05/18 08:26 2008/05/1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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