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는 이름의 신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퍼즐과도 같은 사건구성으로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메가박스와 아트하우스 모모 정도에서만 상영하여 관람권이 상당히 제한 받고 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지난 해의 <원스>가 그랬던 것처럼 순수하게 관객의 호응도에 따라 상영관 수와 상영일자에 변동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설 ‘칠드런’으로 잘 알려진 이사카 고타로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집.들.코>는 바람 속에 실려 지나가면 그만인 ‘청춘’에 관한 보고서다. 세 명의 남녀와 그들을 둘러싼 사건, 이별과 성장, 그리고 그들을 연결 짓는 신의 목소리 ‘밥 딜런’. 반전운동의 기수로 잘 알려진 밥 딜런이’Blowing in the wind’를 부르며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자조했던 것처럼 <집.들.코>에 등장하는 가와사키, 도르지, 코토미(그리고 시이나)는 그들의 청춘이 어떤 희생을 필요로 하든 삶의 저변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들에게 달지 만은 않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들은 그저 ‘흘러가는 청춘’일뿐 그를 억지로 잡으려 하지도 딱히 구분하려 들지도 않는다. 결국 그들은 다르게, 또 똑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킨다.
자꾸 그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을 향해 원망을 하기보단 ‘잠시 신을 가둬버림으로써’ 그 힘겨웠던 순간을 잊고자 한다. 순전히 ‘자기위로’적인 행위에 불과할 뿐이지만, ‘신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말하던 ‘밥 딜런’의 존재(CD와 코인로커 속에 연속플레이 되던 그의 노래)를 잠시 밀폐함으로써 그들이 얻는 동지애적 위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뜨겁고 진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다른 이름으로 ‘청춘’앞에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내어놓지만, 이는 모두 ‘신의 시공간’안에서 이뤄진 역사이므로 그들은 그 모습 그대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청춘이라는 이름의 신’을 코인로커 안에 가둬놓음으로.
+ 이 영화의 젊은 배우들의 호연은 또다른 발견이었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분식집 아들래미로 '미네 류타로'로 출연했던 에이타의 성장하는 모습은 '제2의 오다기리 죠'를 기대케한다. ('후까시'가 아닌 '카리스마'더라.) 소심한 대학신입생 '시이나'역을 너무도 리얼하게 소화해낸 하마다 가쿠 또한 갓 스물이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갠적으로 '천하장사 마돈나'의 류덕환과 캐릭터가 비슷하단 인상을 받았음둥.) 진짜 '가와사키'역의 그 유명한 마츠다 류헤이는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신비한 눈빛으로 '그분만의 아우라'를 감염시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노련한 중장년 배우들의 호연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참 '딴 짓하기 쉬운 나이에' 진지한 연기를 펼쳐보이는 젊은 배우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반짝 거린다. 그들을 격려해주는 방법 중 가장 큰 건, 아마도 직접 표를 사서 극장에 가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가서 박수 쳐주자. 내 안의 잠자고 있던 열정의 자락을 깨워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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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 2007) Different Tastes™ Ltd. 2008/09/03 17:08 ×
컨츄리풍 팝이 아주 맘에 든다...
볼 때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는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영화였달까요.
왕 느끼한 눈매의 가와사키... 헉 <고하토>의 그 놈(또는 년)이다, 했네요. ㅋ
ㅎㅎㅎ 저도 적극 동감해요. 이럴 땐 참 리뷰를 딱히 쓴다는 것도 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그럭저럭이군요'라고만 하기엔 이대까지 발품을 판 게 좀 아까워서
몇 자라도 써야겠더라구요. (그래서 글이 좀 허접하지만....ㅋㅋ)
역시 사람이 느끼는 임팩트는 비슷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 방향이 다른 곳을 향해 뻗어나가는 경우는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