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Inte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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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Summer Interior, 1909


여름의 끝. 그건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숫자의 조합 속에 계절을 가둬놓았다.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의 속성을 알면서도 굳이 일차원 상의 처음과 마지막을 정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무서웠던 것인가. 지금을 살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나 자신의 존재조차 의심스러울 것 같아서, 그래서? 진짜로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존재함의 고독함과 맞닥뜨릴 때,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어딘가로 내몰렸을 때 스포트라이트는 잔인한 기승을 부린다. 낯설지 않아야 될 것들을 잊게 만드는 정신 없는 21세기 안에 기능주의의 아편을 맞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보지만, 언제까지 갈까. 끝을 알 수 없는 여름은 그렇게 조용히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일어서 힘조차 없다.

2009/08/31 00:03 2009/08/31 00:03

Keenies, who are they?

키니즈를 아십니까”. 발음도 생소한 “keenies”“kids”“teenies”의 합성어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새로운 연령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독일 신문 Die Zeit』가 발행하는 매거진의 커버스토리로 이 “keenies”의 모든 것을 다루었다. (커버에 나온 타이틀은 첫사랑이다. ‘직찍이라 양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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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a Scope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일간지 중 하나인 『Die Zeit』가 집어내는 이슈/코드는 늘 허를 찌르는 맛이 있다. 최근에 일어난 핫이슈와는 거리가 멀고, 어떤 문제점을 들추어내려고만 하는 한국식 르포와도 궤를 달리한다. 가장 큰 차별점은 팩트에 대한 깊이는 요구하되, 가치평가는 철저히 배제하는 부분이다. 이는 기사를 쓰는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절제력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보자. ‘13살인 A양은 남자친구와 처음 키스를 경험한 것이 10살 때라고 말했다라는 기사를 쓰고, 그 전후에 아동심리나 교육전문가를 동원해 우리 아이들이 미디어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어른들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식의 자의적 해석을 덧붙이는 경우. Die Zeit』의 “keenies”특집은 이와 같은 전형적인 기성적 잣대를 없애고, 철저히 그들(keenies)의 눈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사견이지만, 훌륭한 르포는 개인적인 의견이나 감정을 최소화하고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대로 전달할 때 가장 큰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그 이후 판단은 온전히 보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 맡기고선 말이다. (온라인판 기사 + 기사)

이 특집을 접하고 놀랐던 부분은 굳이 어른들의 눈에 관심의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9-14세 사이의 “keenies”의 시각이 우리의 그때보다 훨씬 성숙하단 점이었다. 한 토막 인터뷰에는 그 나이 대에 여러 독일지역에 살고 있는 “keenies”의 인터뷰가 담겨있었다. 10세의 토마스(베를린) , 난 더 이상 누군가로부터 감시 당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입고 싶은 옷 또한 내가 스스로 골라 입을 수 있는 나이니깐요. 나는 스스로 하는 결정을 좋아해요. –놀랍지 않은가. 독일 “keenies”의 첫사랑과 데이트, 쇼핑과 파티, 꿈과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담긴 특집기사를 보며 소위 말하는 세대론의 논의가 너무 협소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동시에 거꾸로 한국의 “keenies”라고 부를 만한 특정나이대의 그룹이 자신만의 문화와 가치관을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지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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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Zeit』의 “keenies”특집을 접하며 얻은 3가지 아이디어를 정리해봤다.

1. 단발성 흥미유발에 그치는 주제가 아닌 장시간 관찰 후의 사회문화적 이슈를 던지되, 재미있는 옷을 입혀라. 너무 가벼워도 읽지 않지만, 너무 무거워도 읽지 않는다.

2. 깊이 있는 사실을 전달하되, 쉽게 판단치 말라. 섣부른 가치평가는 사실의 무게감을 떨어뜨린다.

3. 명심하라. 소재는 당신 주변에 널려있다. 문제는 그것을 찾는 시각이다. 부자의 눈에 이 세상은 온통 돈이 될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그 말을 곱씹어보라.

 

2009/08/30 00:05 2009/08/30 00:05

WEB 그릇에 음식 담기

열정은 가득했지만, 재능은 부족했던 영화학도 친구는 유난히 음식과 그릇의 궁합에 관심이 많았다. 마리아쥬란 비단 와인과 음식 간에만 형성되는 궁합은 아니라며, 어떤 그릇에 어떤 음식을 담느냐가 천지 차이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말을 되새기며 음식을 할 때마다 새삼 깨닫는 바는 만드는 이의 고민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똑 같은 원리는 오프라인 상에서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적용될 수 있다. 웹을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그릇에 비유해 보자. 그리고 그 안에 담기는 음식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그릇과의 조화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웹 기술과 문화는 그 어느 나라의 것에도 뒤쳐지지 않는 것이라 자부했지만, 이제는 기술과 문화 그 무엇 하나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기술적 디자인과 내용적 디자인이 어떤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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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의 경우에도 사이드바에 어쩔 수 없이 광고를 배치하고 있지만, 그 외에는 소위 말하는 낚시용광고(대부분 선정적인 이미지와 제목으로 기사 양쪽을 차지하고 드래그 시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외의 멀티미디어나 슬라이드 쇼도 기사 내용이나 카테고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정보 위주로 노출되어 있고, 많이 읽은 기사 등의 순위도 센세이션과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정론지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신문&TV가 디지털미디어와의 전쟁에서 택한 고육지책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CBS 케이티 쿠릭 기용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가 씁쓸하다. 관련기사보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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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텍스트큐브가 제공하는 설치형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적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최근 구글 리더에서 제공한 유명인들의 RSS를 통해 알게 된 한 프랑스 블로그의 기술&콘텐츠 디자인에 매료되었다. 달력과 아카이브, 키워드 등을 모두 사이드바에 배치하고 5-6개의 포스팅만을 볼 수 있게 하여 집중력을 높인 이 블로그는 전체적인 색감과 로고, 타이포와 포스팅의 내용 등이 무리 없이 조화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음식과 라이프스타일을 동시에 전달하는 만큼 블로그 표지에서부터 자신만의 전문성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한국형 설치형 블로그는 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창구가 많지 않다. 물론 블로거 개개인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코딩을 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블로거들 스스로도 한국신문의 경우와 같이 불필요한 위젯과 광고를 경쟁적으로 배치하는 경향이 있어 자칫 통일감과 집중력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설치형 블로그를 소개한다. 바로가기)

p.s Cultura Scope(이하 CS)의 트위터를 개설했다. 나름의 청개구리 심보에 오랫동안 지인들의 제안을 거부해오다, 직접적인 트위터로의 인도(!)가 있어 입문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그 위력을 맛보긴 힘들었지만, 떠들어대던 매력이 무엇인지는 조금 알 것 같다. 다만 최근 트위터의 내용이 신변잡기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에 실망했고, 김주하 앵커와 같은 유명인은 following대비 follower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에 절망했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follawing 1이라는 한층 엄격한 사실!) 기술적 문제가 있어 일단 위젯으로 설치하지 못하고, 오른편 사이드 바에 아웃링크를 걸어놓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고고고)  

 

2009/08/29 00:02 2009/08/29 00:02

7인의 음악인들

소문이 자자했다. 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고 이듬해 금호의 <라이징 스타 시리즈>의 무대에 다시 서 국내에 빠르게 입소문이 퍼진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87년생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94년 독일 청소년 음악콩쿨에 최연소 1위 입상을 하면서부터 젊은 천재의 탄생을 예감하게 했다. 그녀가 올해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모차르트 소나타 음반을 내놓고, <7인의 음악인들>이란 실내악 공연과 <모차르티아나>란 제목의 독주회를 위해 국내무대를 찾았다. 정명훈과 양성원, 송영훈이란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이 갓 스물 두 살의 그녀에게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무대에서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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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던 공연은 내부사정으로 인해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작품으로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제12번 다단조가 연주되었는데, 김수연이 세컨드  바이올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연 돋보이는 균형성과 리드감을 보여줬다. 오히려 퍼스트 바이올린의 이유라가 빛이 바랬을 정도. 상대적으로 연륜이 있는 양성원(Vc)과 최은식(Va)의 안정감 있는 연주도 좋았지만, 그에 뒤지지 않는 침착함을 보여준 김수연의 공 또한 컸다. 예정된 프로그램과 조금 순서가 바뀌어 두 번째 곡으로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3중주 제2번 마단조(작품번호 67)가 연주되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죽은 친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곡은 몽환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입부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송영훈(Vc)의 선율을 시작으로 김수연(Vn)과 김선욱(Pf)이 다음을 유연하게 이어갔다. 특히 김수연과 김선욱이 연신 싸인을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춰가면서도 독자적인 존재감을 살려가는 것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여유로운 연주를 펼쳤던 김선욱은 88년생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함을 과시했다. (심지어 능글맞아 보일 정도!)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정명훈과 김선욱의 연탄곡으로 연주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4번과 5번은 청중의 귀에도 익숙한 곡이어서 호응이 뜨거웠다. 마지막으로 슈만의 피아노4중주 내림마장조(작품번호 47)가 연주되었는데, 정명훈(Pf), 양성원(Vc), 최은식(Va), 이유라(Vn) 모두 나무랄 데 없이 균형 잡힌 해석을 보여주었다.

앵콜곡이 (어떤 면에선) 본곡보다 한층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것이 이례적이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전 피아졸라의 탱고 앨범을 발매한 전적이 있는 송영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첫 번째 곡으로는 7중주로 편곡된 피아졸라의 Obilivion, 두 번째로는 Libertango가 연주되었다. 정명훈과 김선욱은 함께 연주하는 내내 교감하는 듯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김수연의 폭발력은 남미 대가의 곡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의외였던 것은 양성원의 첼로가 (탱고 연주에 경험이 많은) 송영훈의 첼로보다 훨씬 유연하고도 기교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는 점이었다. 연주자 스스로 자유로이 리듬을 타는 모습 또한 진지한 그의 면모 뒤에 숨겨진 매력인 것 같아 보는 내내 흐뭇했다.

7인의 음악인들 모두 한국의 대표적 기악인들이라 그들이 함께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이벤트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실내악 연주가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따라서 활성화 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 연주회를 시작으로 더욱 많은 실내악 연주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번 음악회에서는 김선욱과 김수연이라는 걸출한 신인들이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그들의 기량을 솔로이스트가 아닌 협주자로서 엿볼 수 있어 뜻 깊었다. 오랜만에 파워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신예들을 만나니, 덩달아 마음이 부풀어오르는 듯하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른 며칠 간이 될 것 같다.  

2009/08/27 13:03 2009/08/27 13:03

오늘이 당신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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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갈림길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 많은 스물 중반의 젊은 친구들이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선택이 너무 지겨워요. 삶이 선택의 연속이란 말도 지겹구요. 아는데, 알긴 아는데, 그래도 매번 너무 힘들어요. 뭐가 최선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렁그렁한 눈의 그들을 조용히 안아주는 것? 맵고 화끈한 거나 한 번 먹고 싹 잊어버리자고 하는 것? 아니면 시니컬한 웃음 지으며 life sucks라고 말해주는 것?

적어도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왜 너는 쓸데없이 고민만 하느냐고 소리치지 말 것.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것. 왜냐면 지금 바로 그럴 수 밖에 없고, 스스로도 딱히 답이 없기 때문이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리는 격으로 몰아붙이고 싶다면야 모르겠지만, 좋은 친구가 좋은 청자가 되어주고 싶거든 그러지 말도록.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A의 고통이 B의 고통보다 더하다, 덜하다는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쉽게들 나보다 더 처참한 환경에 놓인 이를 떠올리며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라고 하지만, 스스로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렇게 너른 시각을 갖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소수에겐 가능하나, 그들은 일반인 이상이 반열에 오른 자이다. 달라이 라마라면 모를까.)

시간은 약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닌 것, 언젠가는 문득 떠올라 우리를 당황시키겠지만 순간을 모면하고 나면 과거 속에 묻히는 것.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 찰나. 그 짧디 짧은 시간의 폭을 감당하지 못해 우리는 고민하고 우리는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없는 방황을 거듭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답을 찾고 싶지 않은 이에게 답을 줄게-라고 말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그냥 시간이 흐르게, 조용히 흐를 수 있도록 옆을 지켜주라. 당신이 누군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또는 상대를 약체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실이 풀려버린 마리오네트 같은 존재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그냥 함께 시간이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상책이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은 해보도록.

누구나 방 안의 포인트벽지가 되고 싶어하지 은은한 미색의 기본벽지가 되고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을 함께 지켜봐 준다는 것은 기본벽지가 되는 일이다.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길. 그러면 당신의 친구는 금새 좋아질 것이다. 그 과정을 함께 한 당신 또한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이보다 근사한 덤은 없다.

2009/08/26 11:24 2009/08/26 11:24

이탈리아 체류기 (7) 밀라노의 자존심을 맛보다

밀라네제(Milanese, 밀라노사람을 뜻함)의 자존심이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패션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축구와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밀라노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이라는 쟁쟁한 축구팀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패션디자인을 주축으로 이탈리아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선도도시이기 때문이다.

San S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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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름은 죠세뻬 메아짜 스타디움(Stadio Giuseppe Meazza, 죠세뻬 메아짜는 3-40년대 AC밀란과 인터밀란 두 팀 모두에서 활약하며 2번이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축구선수의 이름)이지만, 산 시로(또는 간단히 시로)로 더 잘 알려진 AC밀란과 인터밀란의 경기장을 찾았다. 1926년 완공된 이후 여러 차례의 레노베이션을 거친 이 경기장은 현재 8만 여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이는 전세계 Top 10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 산 시로 경기장은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피콜로미니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문했던 8월초 당시는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하기 2-3주 전으로 한적했지만, 박물관과 경기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심심찮게 보였다. 40분 남짓한 경기장 투어는 경기장과 관련된 역사와 두 홈 팀에 관련된 에피소드, 라커룸, 프레스룸 등을 직접 구경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박물관 내에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를 구비해서 축구팬들을 유혹하고 있었고, 옆에 자리한 샵에서는 오리지널 기념품을 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밀란팬도 축구팬도 아니었지만, 문외한도 흥미를 가질 수 있게 꾸며진 산 시로의 방문은 충분히 기억할만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Triennale 

Sempione공원 남쪽에 위치한 Palazzo dell’Arte는 밀라노의 디자인 박물관 트리에날레(Triennale)가 위치하고 있다. 본디 트리에날레는 발음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삼 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람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비엔날레가 2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람회인 것처럼) 1923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트리에날레가 1933년 밀라노의 Palazzo dell’Arte에서 개최된 이후, 강렬한 여파로 그 다음부터 본래의 건물이름을 버리고 트리에날레라는 애칭 아닌 애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방문했을 당시는 외관공사로 자칫 지나칠 뻔 할 정도로 초라했지만, 내부는 시원한 2궁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연혁과 대표적 작품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던 상설전시의 곳곳에는 대표 디자이너들의 작품설명과 철학이 동영상 인터뷰로 만나볼 수 있어 한층 이해가 쉬웠다. ‘Steel Life’라는 타이틀의(발음은 지아 장 커의 영화제목과 같다) 기획전은 한 대형철강회사가 5-6명의 아티스트들에게 의뢰해 자신들이 생산하는 강철제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했다고 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강철하면 무거워서 우직하고 또 무식해보이는감이 없잖아 있기에 더더욱 이러한 발상을 통해 잠재적 고객과 사회에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예컨대 국내의 제지회사도 종이를 이용해 작가들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타이어회사나 제과회사도 좋다. 상상력만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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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를 놓쳐 박물관 내 까페에서 현지친구의 추천으로 요기를 했다. 밀라노에서 5순위 안에 드는 스타셰프가 운영하는 격조 있는 곳(?)이었는데, 깔끔한 한 상을 받을 수 있어 늦은 점심이었지만 기분은 한층 업! 메뉴는 계절채소와 호박씨 등의 견과류,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곁들인 샐러드와 (이름은 까먹었지만) 스튜와 치즈를 이용해 만든 리조또를 네모난 틀로 튀겨낸 요리였다. 직접 구운 빵도 맛보고, 맛볼 시간이 없었던 에스프레소도 한 잔. 까페 곳곳에 배치된 재미난 조형물과 시원스레 뚫린 오픈키친까지 완벽한 점심을 멋지게 보조하고 있던 오후였다.  

2009/08/25 00:05 2009/08/25 00:05

Tacit Group Rec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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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싯그룹의 첫 번째 단독공연에 다녀왔다. 컴퓨터음악, 미디어아트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생각하거나 난해하거나 심지어 (덮어놓고)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모든 낯선 것에 대한 처음 반응이 바로 이러한 거리 두기가 아니던가. 꾹 참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새삼 달라진 눈과 귀를 발견할 수 있다. 꼭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지 않다. 하지만 지금껏 경험해왔던 것과 다른 선상의, 확장된 오감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당신을 기꺼이 낯섦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이전 여러 영상으로 만나봤던 장재호교수님(한예종 음악테크놀로지과) DJ가재발(미디어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실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두산아트센터를 찾았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시간 동안 즉흥적 연주에 가까운 5곡을 연주(?)했다. ‘채팅이라는 한글 언어 사용 환경이 음악으로 전화되는 작품이었던 <훈민정악>, 게임의 진행상황이 음의 조합으로 연결되는 알고리즘을 선보인 <Puzzle 15>, ‘미니멀 음악의 선구자 테리 라일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어쿠스틱 악기 여러 대로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곡이지만, 53개의 악구를 랜덤으로 연주하면서도 작곡자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이중고를 감행한 <inC>, 즉흥연주와 타이포그래피의 시각화가 흥미로웠던 <Improvisation>, 마지막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하며 만들어지는 블록의 모양에 따라 다른 음이 연주된 <Game over>에 이르기까지. 참신한 관객과 또는 연주자간의 인터랙션을 끌어내면서도 알고리즘 컴포지션이라는 자신들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광경이 꽤나 즐거웠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 일부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가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고, 그 시도의 다양성 또한 셀 수 없이 다채롭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단독공연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참 반갑다. 물론 아직까지 관객규모가 크진 않지만, 잠재적으로 이 영역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안해볼 때 태싯그룹 뿐 아니라, 또 다른 퍼포머들이 등장해 파이 자체를 키워주면 한층 공연환경이 풍성해 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CT내에서의 환경은 내게 직접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한다기 보단, 어떤 요소가 어디에 필요한지를 가늠케 하는 시각을 제공했다. 문화와 기술, 또는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접점은 실로 어마어마하지만, 그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미래의 음악, 미래의 이야기, 미래의 집은 과연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지, 나 자신조차 모르긴 하나 그를 한 번쯤 상상해 보는 작업은 현재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에게 탁 트인 시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왜 그걸 해 봐야 하지?’라는 질문보다는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이 우리에겐 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한다. 그래야만 오늘을 뛰어넘어 볼 수 있을 테니.  

2009/08/24 00:01 2009/08/24 00:01

이탈리아 체류기 (6) 코드명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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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에서의 편안했던 1박을 끝내고 다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이동하니,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중심부 밀라노에 도착했다. 6-7년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들렸던 것이 마지막이었지만, 여러 잊지 못할 기억들이 많이 남아 이 도시는 내가 가장 친근(?)하게 생각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고의 카푸치노를 맛 보았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고, 꼬르소꼬모의 셀렉팅에 감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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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와 몬테나 폴레오네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오모 광장으로 이동했다. 성수기였기 때문이었는지 역시나 두오모 광장 근처에는 여행객들과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지갑을 열고자 하는 비둘기 모이족’(이들은 유명광장 등지에서 곡식을 가지고 비둘기를 유인하는데, 그를 지켜보는 여행객에게도 곡식을 나눠주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 곡식을 받아 들게 되면, 대가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전형적인 수법이니 조심하시길)들로 붐볐다. 10년 이상의 보수공사기간을 마치고, 완성된 두오모의 모습을 보니 그 정교함과 수려함에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두오모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편에 위치하고 있는 몬테나 폴레오네는 여전히 명품거리로서의 위상을 지켜내고 있었다.(전통적인 아케이드 형식의 몬테나 폴레오네는 발터 벤야민의 지적처럼 상품자본주의의 원조신전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몸소 체험하게 해주는 좋은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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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교회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선 사전예약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시기 별로 예약사이트를 개방하는 타이밍을 맞추어야만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데, 사이트 또한 불안정해서 제대로 예약하기에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결국 대행료까지 합쳐 6.50유로라는 적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한 행렬에 합류했다. 15분 간격으로 30명 정도의 방문객만을 허락하는데, 이들이 입장할 때도 삼중문을 통과해야지만 그림이 걸려있는 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현지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 그림을 유지/보수하는 데 일본 기업이 대대적인 스폰서십을 자청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스케일이란!) 10분간의 시간 동안 그림을 감상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엄격했던 보안 때문이었는지 관람객들의 기대감도 한층 고조된 듯했다. 은은한 조명아래 모습을 드러낸 <최후의 만찬>은 너무도 익숙한 그림이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감동이 덜 했으나, 여전히 그 안에 담긴 여러 읽을 거리와 조형미가 대작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Tip! <다빈치 코드>를 읽거나 본 이들에게는 훨씬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2009/08/22 11:49 2009/08/22 11:49

이탈리아체류기 (5) 아레나 in 베로나

발표를 마치던 날, 나머지 일정을 마치고 늦은 오후 베니스에서 베로나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특이하게도 같은 2등석이라도 에어컨이 작동되는 칸과 그렇지 않은 칸이 있음을 발견했다. (왜 그랬을까.) 담담한 척해도 은연중에 긴장을 했는지 가는 기차 안에서 금방 골아 떨어졌다. 한 시간 반 남짓 서쪽을 향해 달리다 보니 아담한 도시 베로나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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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는 소박하지만 고풍스러운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디제 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과 은은한 빛의 도시색이 눈에 들어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엔 낭만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듯 했다. 중앙역에서 내려 이 십분 가량 걸으면 베로나의 중심인 브라광장과 만나게 되고 그곳에는 바로 그 유명한 베로나의 원형극장, 아레나가 웅장한 자세를 뽐내고 있다.

1910년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은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고 한다. 베로나 부근에 진입하자 일행은 베로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고, 세라핀은 불현듯 그곳에서 내리자고 제안했다. 다짜고짜 아레나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켜게 한 세라핀은 아름다운 소리에 감탄했고, 결국 1913 8월 처음으로 베르디의 <아이다>가 아레나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Arena di Verona Festival>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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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을 취하고 찾은 저녁 7시의 브라광장은 화려하게 차려 입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매일 다른 레퍼토리의 공연을 펼친다는 아레나 외부 한 켠엔 다음 날 공연의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여러 개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원형극장은 웅장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아테네의 신전이 신들의 향연이 벌여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베로나의 아레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를 제공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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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아레나의 메인 공연으로 유명한 <아이다>를 보려고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카르멘>을 예매했다. 자유석을 구하려다, 선착순으로 입장하기 위해 폭염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좌석 중 가장 저렴한 것을 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유로를 호가했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무대미술이 흥미로웠던 아레나의 무대는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는 듯한 연출을 보여줬다. 공연 당일은 만석은 아니었지만, 입장 시 나누어줬던 촛불을 나눠 붙이며 아레나 속을 환하게 비추는 관객들 덕분에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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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의 기술과 무대는 없었지만, 아날로그적인 공연의 힘이 가지는 최상을 보여줬던 아레나의 오페라. 더운 여름 밤 속 협소한 자리의 불편함을 말끔히 씻어버리는 예술적 펀치였다. Grazie, Arena! Grazie, Verona!  

2009/08/21 11:18 2009/08/21 11:18

이탈리아 체류기 (4) 베니스 섬 기행

베니스에는 여러 작은 섬들이 있다. 해수욕장과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리도섬과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섬, 그리고 알록달록한 예쁜 집들로 알려진 부라노섬까지. 시간관계 상 같은 길목에 놓여진 무라노섬과 부라노섬만을 잠시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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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방(좌)과 전시장(우)


베니스 유리공예의 역사와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는 섬 무라노에는 여러 유리공방과 고가의 유리공예품을 파는 전시장으로 가득하다. 운이 좋으면 열려진 공방 문 사이로 유리공예하는 모습을 훔쳐볼 수도 있다. (이열치열이 따로 없다. 더운 날씨에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유리를 보니;;;) 실수라도 해서 깰까 싶어 전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쉽게 손이 갈 수 있는 기념품은 없었다. 다소 원색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의 장식 때문에 설사 재량이 된다 해도 구입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었다. 묵었던 숙소에도 전시장에서 본 고가의 샹들리에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리 생각에) 촌스럽다고 함부로 대할 게 아니었던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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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서 예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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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창


폭염에 지쳐 배를 타고 조금 더 달려가니, 그리스의 산토리니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부라노섬이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푸른 지중해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하얀 벽과 푸른 지붕의 집들이 잊을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던 산토리니. 그 곳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부라노섬의 아기자기함과 알록달록함은 동화 속 나라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늘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른 개성을 자랑하면서도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집을 짓고 색을 칠하고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을 테고, 배로만 다니면 불편하니 차도 들여오고, 하다못해 오토바이나 자전거라도 들여오고픈 마음이 들텐데도 그곳의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에 느림에 익숙해진 듯 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물론, 서울은 세계에서 (돈만 있다면) 가장 편리한 도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인간위주’, ‘자기위주로 변화시켰는지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인간의 편의에 자연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기다움에 인간이 순응해야 하는 이유. 바로 베니스의 작은 섬들에서 깨닫는 진리다.

2009/08/20 11:31 2009/08/20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