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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7/29  Conference in Venice (1)
  2. 2009/07/12  뒤 태의 압박
  3. 2009/07/09  윤상문법
  4. 2009/07/08  강박적 혁신의 딜레마
  5. 2009/07/07  하펜시티의 시사점
  6. 2009/07/06  제12회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2)
  7. 2009/07/05  <Spring Awakening>
  8. 2009/07/03  페차쿠차 나이트
  9. 2009/07/03  설탕물 묻힌 과학
  10. 2009/07/02  불량시민

Conference in Ve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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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간 포스팅이 뜸했던 변명을 이제야 하게 되는 군요. 저는 지금 베니스에 있습니다.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Arts in Society라는 학회에서 ‘Leadership in Art Organization: How to diagnose the efficiency of leadership in art organization’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 망신살 뻗치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앞서지만, 뭐 한술 밥에 배 부를 수 있나요. 이렇게 하다 보면, 다음엔 더 낫겠지-하는 마음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발제준비는 제쳐두고, 베니스 비엔날레 행사장 중 하나인 Giardini에 다녀왔는데요. 생각보다 난해한 설치미술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 당황스러웠던 게 이제까지의 중평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다녀와서 더 말씀 드리도록 하죠. 아무튼 학회준비로 블로그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다녀와서는 다시 열심히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등한시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너른 이해 부탁 드립니다. 그럼, 7월 마무리 잘 하시고 8월에 뵐게요. Ciao!  

2009/07/29 00:51 2009/07/29 00:51

뒤 태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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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만 들어왔던 김용걸의 귀국무대를 접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행운이었다. 시대의 예술가를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건,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맡았다고 할 때만큼의 기대감이랄까. 한국무용계에, 특히 발레리노들에게 그와 같이 완벽한 롤모델이 손 닿으면 있을 법한 곳에 있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기에 흥분들 감추지 못한 기색이 관객석에도 역력했다. 지난 주말 두 번의 공연을 통해 보여진 김용걸의 무대는, 실력을 뛰어넘는 연륜 그 자체였다. 연기력, 표현력, 테크닉, 무대매너 하나 뺄 것 없이 완성된 발레리노의 모습은 , 역시 인간의 몸은, 인간의 몸짓은 아름다운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포스터를 통해 훔쳐보았던(?) 그의 뒤 태 역시, 압박이라고 표현할 길 밖에는. 무용수 김용걸이 걸어온 길의 자취가 그의 몸 근육 하나하나, 굳은 살 켜켜이 묻어있는 것만 같다. 말을 거는 방식은 참으로 여러가지인가 보다. (인터뷰 기사)

2009/07/12 23:46 2009/07/12 23:46

윤상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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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들으면 ‘OO!’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는 이러한 특성이 식상함과 동의어로 치부되었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내기까지 고루한 과정을 지나야 함을 방증한다. 지난 7일과 8일 양일 간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열었던 윤상에게는 확실한 색이 있다. 너무 하드코어적이지 않은 전자음과 달달한 가사의 조화, 그리고 (여심을 포함한)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멜로디라인까지 그의 색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그의 한결같음은 판에 박힌 지루함이 아니다. 그 한결같음은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자기와의 싸움, 자신을 넘어섬과 닿아있다.

이번 콘서트를 통해 그는 자신의 클래식 넘버와 신곡, 그리고 실험정신이 담겨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여성관객층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 이번 콘서트에서는 가수 윤상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성이 따라다녔다. 이따금 음정이 불안했다는 점은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그가 스스로 전체적인 기술과 음악적 완성도를 전부 관할하고 있었다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크지 않은 무대를 층을 나누어 입체적으로 구성해 한층 시각적인 효과를 높였고, 조명과 영상 프로젝션에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사운드적인 면에서 최상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장비동원 뿐 아니라 디자인을 확실히 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한 프로정신이었다. ‘ The 1st의 스트링과 정재일과 하임 등의 세션 또한 콘서트 무대를 꽉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견이지만, 정재일은 랑랑과 맞먹는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

, 진짜 최고였어. 나도 저런 음악하고 싶다.” 콘서트가 끝나고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던 콘서트 장 앞길에서 어느 여성관객의 감동 어린 한 마디를 엿들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그러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소망까지도 일깨워 주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윤상은 자신만의 문법으로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한 셈이다. 나 혼자만을 위한 중얼거림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말걸기로써 말이다.   

2009/07/09 11:51 2009/07/09 11:51

강박적 혁신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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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 By Matthew Dent


<’무어의 법칙이란 게 있다. 마이크로칩의 밀도는 약 1년 반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비행기가 힘차게 이륙하는데 사람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잠깐만, 거기 서 있어하며 매달리는 형국이다. 이런 일은 곳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존 마에다 총장,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SID)

지난 주말 인터뷰 기사를 읽다 이거다싶었다. 언젠가 비슷한 맥락에서 <테크니컬 랑데부, 우위와 적합성>이란 글을 쓴 적이 있어 이와 같은 주제가 한층 더 깊게 다가왔다. 홍익대 변지석 교수님의 블로그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발견한 적이 있다. <Devil’s Theory of Innovation>이란 제목의 글에서 예로 든 건, 한 면도기 회사가 3개의 날에서 5개의 날로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출시했는데 정작 사용자들은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이전 것이 더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경우들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조직이건 현상유지(status quo)보다는 지금보다 확장된 영역으로의 이행, 혁신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면 내외부적으로 혁신이 필요한 때와 그 정도를 제대로 가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두들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상한 최면에 걸려있지, 그 누구도 우리가 혁신을 과연 필요로 하는가? 왜 그런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필요에 의한 혁신이 아닌 ‘(통과의례적) 혁신을 위한 혁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의 예들처럼, 혁신의 과정 이후 누구도 이에 대해 환영하거나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혁신이란 강박에 시달리게 되면 무조건 더 새롭고 더 모던한 무언인가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혁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존 마에다 총장이 예견하는 것처럼, 정보기술의 괴리는 줄어들고 기술수준이 평평해지는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다. 문제는 혁신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당위성이며, 조금 더 다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힘-독창적 안목이 되지 않을까.  

2009/07/08 10:59 2009/07/08 10:59

하펜시티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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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의 항만재개발 프로젝트 하펜시티(Hafencity)가 세간의 관심사다. 최근 국내에서도 시티노믹스워터프론티어니 한강지구, 부산 북항과 관련된 사안들을 국제적인 흐름에 동승시키려는 노력이 적극적이어서 '하펜시티'의 진행과정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다.(관련기사 1 + 2 + 3)

독일어로 항구를 뜻하는 하펜(Hafen)’과 영어 ‘City’의 조합에서부터 독일의 도시에서 출발했지만, 세계를 엮는 국제도시로 기능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실제 하펜시티는 슬럼화되어 있던 주변을 재정비하여 엘베강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재탄생을 꾀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25년까지 장장 24년 간 8조원 남짓 하는 예산을 투자하여 만들어지는 이 대형 프로젝트는 지방정부가 설립한 법인이 총괄하여 이루어진다. 물론 스타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나름의 랜드마크를 구축하고 있지만, 그 형태 또한 주변경관과의 유기성/융합성을 최우선순위로 하고 있다. 또한 도시재개발에 건축가와 디자이너뿐 아니라, 인류학자, 사회학자, 생태계학자 등 전방위적인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들과의 자유로운 대화의 창구를 마련함으로써 민학이 함께 어우러져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미 완성된 잔토르카이 지구를 중심으로 현재 공사가 한창 중인 현장을 투어형식으로 맛볼 수 있는 것도 새롭다. 안정 상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열려 있는 현장,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란 이미지도 심어줄 수 있기에, 우리 또한 충분히 벤치마킹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건, ‘엘브필하모닉 콘서트 홀이다. 유선형의 형태의 내부를 도입한 콘서트홀 내부나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는 또 다른 느낌의 수상 콘서트홀의 외관이 조감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곳의 내부공사 또한 외부에서 듣거나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발상도 새롭다. ‘1등 도시라는 보다는 행복한 도시’, ‘지나치게 멋져 위화감이 드는 도시보다는 적당히 어울려 멋스러운 도시’, ‘스타가 만들어 어쨌든 비싼 도시가 아닌 시민 하나 하나의 작은 습관까지도 중히 여기는 도시’. 바로 하펜시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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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Philharmonie, (맨 위부터) 외부, 내부, 보고듣는 공사현장


2009/07/07 11:01 2009/07/07 11:01

제12회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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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과욕이었나. 2년 전에 수상한 이력 때문에 올 해 다시 수상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 글 수준이 좀 떨어진 까닭도 있겠지만 후후) 아무튼 비평수상작들을 모은 수상집이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그러한 연유에 비평문은 안타깝게 블로그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몇 권 받으면 관심 있는 이들에게 돌려볼 요량. TV 비평의 시선 안에 들어오는 작품들은 얼추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소재들도 꽤 눈에 띄었고, 이렇게나마 TV비평의 장이 넓혀진 것에 대해 뿌듯한 감마저 든다. 특히 올 해의 비평작 경향은 여성으로 많이 몰렸는데, <아내의 유혹>, <내조의 여왕> 등 여성이 주축을 이룬 작품들을 다룬 비평이 꽤 있었고, 나 또한 <엄마가 뿔났다> <달콤한 나의 도시> 속 여성 주인공을 비교한 비평문을 냈다. 알파걸과 슈퍼우먼, 억센 엄마와 아줌마가 TV문화 전면으로 나온 것은 실생활과는 관련 없이 무척 고무적이다.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많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가정과 관습, 스스로 안에 갇혀있던 여성 캐릭터들이 사회와 정정당당히 승부를 하는 모습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그 외에도 <라라라> <다큐프라임>처럼 비평할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한 양질의 작품들이 그 대상에 올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척박했던 한국의 비평문화도 이 공모전의 이름처럼 모든 이들이 함께 쌓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 높이 올라가지 못했어도 만족스럽긴 처음이다. 좋은 '동지'가 많이 생긴 까닭일까.) >공모 수상작 리스트

2009/07/06 12:11 2009/07/06 12:11

<Spring Awak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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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프리미어 공연을 보고 왔다. 뮤지컬계의 블루칩 김무열과 조정석을 한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많은 여심을 움직인 듯 했다. 아담한 규모의 두산아트홀 연강홀에는 무대 위의 자리까지 합해 거의 모든 좌석이 차 있었다.

지난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 수상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스프링 어웨이크닝> 1891년 독일의 한 청교도적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십대 남녀의 사랑과 우정, 자유와 죽음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다소 직접적인 묘사와 가사로 기대를 모았었다. (런던공연리뷰)한정된 공간 안에서도 다이내믹한 면모를 보이며, 잘 알려진 레파토리 하나 없었지만 중독성 있는 노래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7인으로 구성되었던 밴드도 부족함 없이 뮤지컬을 보조해가며, 꽤 성공적인 프리미어를 선보였다. 이따금 노래와 내용전개가 뚝뚝 끊어지는 듯한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몰입도 높은 구성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 주말을 필두로 본격적인 공연에 들어가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근처 광장시장에서 푸짐한 빈대떡으로 요기를 하고, 늦은 저녁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뮤지컬을 보러 가는 건 어떨까. (그랬더니 좋았더라는 1인의 추천코스)

2009/07/05 21:41 2009/07/05 21:41

페차쿠차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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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하나! 오늘 오후 3시까지 예매이니 아직 시간은 남았다. 아트, 디자인, 건축, 영화와 관련된 기성작가와 신진작가가 한데 모여 20장의 이미지에 대해 20초간 이야기하는 장이 오늘 저녁 6시 광화문 역사박물과 옆 가든플레이스-루프에서 펼쳐진다.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페차쿠차 나이트는 예술을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장으로써, 경계를 허물고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장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 페차쿠차 서울 l 페차쿠차 인터네셔널

2009/07/03 13:54 2009/07/03 13:54

설탕물 묻힌 과학

과학은 본디 썼다. 재미없는 실험과 무작정 외는 공식으로 기억되는 어린 시절의 과학은 쓴 맛이었다. 과학을 좋아했던 몇몇 무서운 친구들과 색다르게 설명해 보고자 했던 노력이 전혀 없던 몇몇 과학선생님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아이튠즈를 통해 MIT의 유명한 물리학 교수의 수업을 접했던 한 친구는 장성해서야 이렇게 재밌는 분야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한탄 아닌 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렇다. 이전의 과학은 편식하는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이었다. 우리 아이가 안 먹는 이유가 엄마의 음식솜씨 때문인지도, 그릇된 식생활 지도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다. 무조건 아이 탓을 했다. 물론 여러 음식을 잘 먹어보지 않으려는 아이 탓도 있겠지만, 아이는 어디까지나 아이다. 맛있게, 먹고 싶게 해줘야 먹는다. 그렇게 쓰디 썼던 과학이 달콤해지려고 한다. 나도 알고 보면 꽤 달아-하고 손짓한다. 그렇게 투정을 부렸던 아이어른까지도 고개를 돌린다. , 할 수 있었는데-왜 이제야 달콤해진 건지 야속하기만 하다.

#1 쉬운 과학적 글쓰기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와 과학저술가 하리하라(필명)는 쉬운 과학적 글쓰기의 대표주자이다. 정 교수의 그 유명한 <과학콘서트>는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기록되었고, 하리하라는 <과학 읽어주는 여자>등을 위시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끊임없는 글쓰기로 그 이름을 알린 지 오래다. 이들의 출현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대중을 위한 과학서적을 출판하고 있지만, 성적은 저조하다. 물론 양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 질적인 성장도 따라온다는 게 출판계의 공식이지만, 글쓰기-특히 대중을 위한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무작정 뛰어들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그래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학계, 정부부처, 교육기관이 모두 나서 육성해나가야 할 과제다. ‘우리끼리만 하는 이야기’-철옹성의 시대는 끝났다.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쉽게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문 시대이기에 이들의 선전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갑다.  

#2 다채로운 볼거리의 과학 프로

KBS1 <과학까페>가 단연 돋보인다. 토요일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적절한 주제선정과 다채로운 볼거리에 있다. 날로 성장하는 컴퓨터그래픽의 향연은 이해를 한층 드높인다. YTN사이언스 TV <KISTI의 과학향기>도 돋보인다. KISTI는 동일한 이름의 웹진도 발행 중이다. ‘게임도 하고 건강검진도 받고와 같은 기사는 건강을 위한 기능성게임을 생활실례에 빗대어 작성해 읽기 수월하다. 더 이상 BBC의 다큐 채널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이치를 하나 둘씩 깨우쳐주는 과학 프로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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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자되는 과학도

CBS의 시트콤 <The big bang theory>는 입소문 탄 지 오래되어 소개하는 것조차 민망하지만. 작가들의 직간접적 경험을 토대로 한 실감나는 상황연출 덕에 과학도 돌+I’들을 낄낄거리며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과학도들조차 배꼽을 쥐며, 자조할 수 있는 시트콤이기에 전 계층에게 추천한다. ‘나 공부 깨나 했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심지어) 강추한다. (많이 아는 것도, 똑똑하고 잘난 것도 중요하기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초월해 스스로를 희화화할 수 있는 힘에 감탄하곤 한다. 잘났는데 심지어 유머러스하다니. 세상은 좀 불공평한 구석이 있다.)   

2009/07/03 12:02 2009/07/03 12:02

불량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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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ucklava

촘스키가 강변했던 불량국가론은 비단 국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국가의 실체를 받아들인 이래, 시민의 입장에서 국가에 대한 비판은 여러 모양으로 있었지만, 거꾸로 시민이 시민의 자질 또는 양식에 대한 반성은 있었는지 물을 때다. 국가라는 권력과 개인 또는 집단의 권력 사이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는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러한 파워게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자의적인 해석이나 오용은 절제하고, 합리적 결정/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 있어 국가든 개인이든 합리적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문제나 공공의 선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느냐와 같은 의문은 여전히 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국가와 시민이 아슬아슬한(?) 계약관계를 유지해왔음을 상기하며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문제는 불량시민의 출현이다. 이해관계의 사각지대가 생겨나면서 그를 역이용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국가:시민=가해자:피해자의 공식을 만들어놓고, 상황과 명분을 가리지 않고 그를 적용한다. 최근 한 시민단체에게 예산 외 지원을 해주었는데, 돌아오는 건 또 다른 원성뿐이라던 정부관계자의 말은 왠지 측은하다. 비단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간의 기본적 양식이나 예의조차 사라진 것에 대한 한탄이랄까. ‘도움 받는 자는 무조건 더 요구해도 된다는 사고가 용인되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도움을 주는 대상이 누구이던 간에 그에 대한 적절한 인정과 감사의 마음은 도움의 양과 질을 떠나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있다고 하여 기본적인 행정사안에 조차 자기이해중심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무료함에 시달려 달리는 버스에 총격을 가하는 세태를 보며, 국가 존재의 이유를 되묻기 이전에 시민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결국 막 나가는 시민까지도 덮어야 한다는 게 슬픈 국가의 운명이겠지만 말이다.


2009/07/02 18:22 2009/07/02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