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뮤지엄] 오디오북 시리즈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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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전작 <뉴요커>는 이따금씩 들춰보는 책이다. 조금은 꼬인듯한, 그리고 조금은 긴 듯한 그녀의 문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렴풋한 상()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 심리를 공부한 사람이어서 그런가. 문자가 꼭, 문자만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최근 <취향>이라는 근작을 냈다. 뉴욕에서 남편과 공부하면서 일하면서 여기저기를 관찰하면서 익사이팅하게 살고 있는 듯 하다. 부러운 마음에 그녀의 취향에 관한 긴 글, 오디오 북에 담아본다.

취향은 어디서 오는가; 「취향」, 박상미 , 2008, 마음산책, 199-201p.  

2008/11/15 22:42 2008/11/15 22:42

KBS 8 뉴스타임, 첫 더블 여성 앵커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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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조바심과는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며 , 여긴 이런데 우린 왜란 질문은 내외부적으로 질타를 받기 일쑤면서, 자체적인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7일부터 개편되는 ‘KBS 8 뉴스타임의 첫 더블 여성 앵커 제는 그 동안 다른 이들의 사정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부러워해왔던 장면이 현실화되는 진화의 일면으로 보여진다.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방송국만큼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집단도 없다. 대중보다 한 보 이상 빨리 앞서 나가야 하는 언론의 성격을 감안하자면 이러한 조직의 성격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게 (안타까운) 사실이다.

총 다섯 번에 걸친 앵커 기용 테스트를 통해 최종 낙점된 정세진 아나운서와 이윤희 기자가 새 ’KBS 8 뉴스타임의 얼굴이다. 김주하 ()아나운서(이제는 기자)‘MBC 뉴스데스크의 주말 앵커로 자리 잡았을 때 이상으로 의미 있는 기용이니만큼 단순히 이벤트 성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정이야 어쨌든 김주하 앵커가 1년이라도 쭉 끌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1인으로서 여성 앵커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누구보다도 애정(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비단 여성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능력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단 말을 듣기 바란다.) 아무튼 축하! (관련기사 링크)   

2008/11/12 17:36 2008/11/12 17:36

International Symposium on Culture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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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al Opportunities」란 주제로 열린 제2 SymCT(International Symposium on Culture Technology)가 지난 11 6-7일 양일간 서울 상암동 DMC단지 내 문화콘텐츠컴플렉스(C3)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IAMASItsuo Sakane, Standford University Ge Wang 등 내로라하는 CT계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 내실 있는 심포지엄을 이어갔다.

특히 둘째 날 펼쳐진 ‘Music of the Future’에서는 Ge Wang을 비롯, 장재호 교수님(한국예술종합학교), 여운승 교수님(KAIST) 등 전자/컴퓨터 음악을 능가하는 미래의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국내 몇 안 되는 귀한 자리였다.

여운승 교수님 네트워크 퍼포먼스


 

2008/11/11 19:10 2008/11/11 19:10

아트리더십 2008 발표

내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상지대학교에서 2008년도 문화경제학회 추계학술대회가 개최됩니다. 일전에 말씀 드린 대로 대학원생 세션에서 <Art Leadership – Leadership by Art, Leadership for Art>란 제목으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요. 원내 행사(그 외 등등)와 겹치는 바람에 막바지까지 ’(혹은 삽질이라고 하죠)을 보고 있는 한심한 시츄에이션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예술경영, 문화경영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 요즘, 그를 위한 맞춤형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다 아트리더십이란 개념을 착안하게 되어 여기까지 왔네요. 비단 문화예술 산업 뿐 아니라 창조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는 리더십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관련 발표 자료를 (미리) 업로드 합니다.

*논문(전문)을 보고 싶으신 분은 따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b-hind@kaist.ac.kr  

2008/11/07 16:14 2008/11/07 16:14

축! 감성정치 르네상스

시작은 이러했다.

인간의 의지에 따른 행위의 자유는 그의 고유한 이성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이성은 인간 스스로를 구성해가는 규칙을 형성하고,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자유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한다.

중세사상가이자 정치철학자였던 존 로크가 굳이 이성의 우월성 또는 절대성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더라도 서양철학사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의지한다는 것은 대부분 무언가 미천한 것으로써, ‘감상에 빠지다와 같은 비아냥거림을 받기 일쑤인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불완전하고 카오스적이며, 명확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변덕스럽기까지 한 감성이란 요물에 영혼을 파는 것은 신경질적인 예술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행위였다. 감성정치? 웃기는 얘기다. 적어도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렇다.

1988년 미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상대후보보다 20퍼센트나 앞서가던 민주당의 마이클 S. 듀카키스 후보가 버나드 쇼를 만났다.

버나드 쇼(진행자): (당시) 주지사님, 만약 키티 듀카키스(그의 아내)가 납치당한 후 죽임을 당했다면 당신은 그 살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시겠습니까?

마이클 S. 듀카키스: 아니요, 버나드. 저는 제 전 생애를 걸쳐 사형제도에 반대해 왔습니다. 그 방지책에 대해 어떤 근거도 찾지 못하겠군요. 저는 흉악범죄를 다스리는 데 사형제도 말고 더 효과적인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토크쇼 이후 듀카키스는 순식간에 우위를 빼앗겼다. 그가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성적으로 잘못된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쇼가 기대했던 건 아마도 그의 감성에 대한 가감 없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듀카키스는 자신의 부인을 죽인 살인마에게 당연히 사형에 처하겠다고 답한 대신,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서 고수한 정책적 가치를 최우선 순위에 둔 것이다. 결국 이 토크쇼를 지켜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듀카키스의 대답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과연 사람일까’. ‘그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일까’. ‘그는 과연 내가 신뢰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서 적합한 사람일까’. 이와 같은 의문에 듀카키스는 확신을 주지 못했고, 결국 그는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감성정치의 일면이 드러난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의 이성적인 면모보다는 소소한 감성적 코드에 더 깊고 내밀한 개입의 성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뇌 과학에서는 뇌와 감성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벌여왔다. 정치 심리학자인 드류 웨스턴의 책 「정치적 뇌」에서 저자는 뇌가 정보와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을 한다고 말한다. , 정보가 욕망과 결합하면 정치적 뇌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이 욕망했던 결론을 향해 나름의 이성을 주조해낸다는 것이다. 뇌가 비단 이성적이냐 감성적이냐는 논쟁을 떠나서 자칫 이성적으로 보이기 쉬운 결정들도 대부분은 욕망과 결합한 감성적 판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정치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굳이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에서 감성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가 흘린 두 번의 눈물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녀의 첫 번째 눈물은 동정을 자아냈지만, 두 번째 눈물은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라는 조건이 달리기 때문이다. 감성()은 개인의 표현 양식 중 하나지만, 정치에서 그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해진다. 본래의 의도는 중요치 않다. 그것이 사후에 어떻게 해석되느냐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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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월 존 케리를 대선 후보로 지명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번의 연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버락 오바마(당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출마)에게는 하나의 절대적인 옵션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원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미국, 미국의 삶에 대한 대안 없는 선택이라고 믿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그의 접근법에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유사한 인물, 자신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후보를 찾는 미국 유권자들에게 이보다 더 탁월한 호소는 없는 듯 보였다. 민주당 마지막 전당대회 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연설을 한 지 꼭 45년째 되던 날, 오바마는 그의 또 다른 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양한 인종문화적 체험을 쌓아온 삶을 통틀어 스스로 작은 미국임을 강조했던 그가 약속한 은 이성적 선상에서만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고백적 어투와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어쩌면 고도로 훈련되었을 지 모를) 진정성은, 적어도 듣는 이의 감정을 동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매케인에 비해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오바마는 줄곧 감성적 전략을 취한다. ‘그래요. 나는 어쩌면 (정치에 대해) 아직 잘 모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는 그 말을 우회적으로 ‘Yes, We Can’으로 치환한다. 그럼으로 인해우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우리를 이루는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민주주의’, ‘미국’, ‘미래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란 구호를 외치게 하는 것이다. 비록 그 민주주의가, 그 미국이, 그리고 또 그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처칠이 지적했듯이제껏 시도된 모든 체제를 제외하고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정치체제일는지 모른다. 이성적 판단을 배제한 상태에서 다수가 감정을 좇아 (대선과 같은) 국가적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많은 정치체제 안에서 다분히감정과 연루된 결정들이 이뤄졌고, 그를 통해 역사는 피를 흘리기도 성장을 경험하기도 했던 것 아닌가. 이성과 감성 중 무엇이 더 우월하냐는 지지부진한 논쟁은 근대 이전으로 덮어두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이성을 움직이는 건 단연 합리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한층 나아가 감성이 작동하는 데 이성적인 요소가 적절히 배치될 때 한층 임팩트 있는 전달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감성정치는 이러한 감성과 이성 간의 관계학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사회의 불안정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덩달아 그 불안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보라색이 커밍 쑨 코드로 점쳐지고, 그 덕에 조만간 온 도시가 보랏빛 물결로 뒤덮일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 다소 소름 끼치는 광경이지만, 감성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 어떤 사회과학적인 접근방법으로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짜릿하지만, 이내 절망감을 안겨준다. 그 어떤 성공모델도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기 때문이다. 이성이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던 시대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사이로 감으로 때리는 식의 시도들이 횡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 좋은 사람이 선봉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모양새도 비슷해졌다. 학식이 많고, 경험이 많은 것은 관련 서적에서나 늘어놓을만한 얘기가 되었다. 이성적 데이터보다는 감성적 결정력을 응집하는데 더 많은 전략가들이 몰려들어야 한다. 숫자보다는 이미지 하나가 개개인의 심장뿐 아니라 뇌까지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덕훈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중략)

사랑은 리얼이고 필링이고 터치지요.”

이를 빌어 정치에 대해서도 재정의해 볼 수 있겠다. ‘정치는 이제 리얼이고 필링이고 터치라고 말이다. 나아가 수 백 년의 정치사를 뒤집을 만한 주장도 가능할 게다. 지금껏 인류는 단 한 번도 전적으로 이성에 근거한 정치적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고. 모든 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사로운 감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감성정치는 막 시작된 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있어왔던 것이다. 그저 시대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나, 인지하지 못했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대인은 더 이상 냉소의 바지자락을 잡고 있지 않다. 리얼하고 필링으로 통하는 무언가와 터치를 하고 싶을 뿐이다. ! 감성정치 르네상스.

* 이 글은 어제 마감된 <GQ KOREA CRITIC AWARD 2008 >에 공모한
대중문화비평입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무단으로 전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2008/11/04 09:30 2008/11/04 09:30

건축과 사회, 200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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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직도 손으로 직접 도면을 그리신다. CAD도사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손끝의 감각을 이용해 집의 모양을 그려낸다는 것은 아날로그적이다 못해 무뎌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난 아버지의 도면이 좋다. 수많은 제도샤프와 각가지 모양의 자, 수 십 년은 족히 된 비스듬한 제도책상과 깜빡이는 램프 그리고 번지고 때가 묻은 채 돌돌 말려진 제도용지들. 아버지의 작업실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리곤 했던 딸과 늘 그런 딸을 하염없이 예뻐해 주셨던 아버지가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했던 글 디자인 열변을 우연히 아버지께 보여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건축과 사회」 2008 가을호에 디자인 서울, 디자인 코리아를 슬프게 환영하며라는 실리게 되었다. 원래의 내 글에 아버지가 덧붙여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형식으로 완성된 이 글은 내 입장에서 보자면 한 없이 부끄러운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가슴 한 켠이 터져나갈 정도의 충만함을 선사하는 이벤트로 기억될 것이다. 하하하. 아버지와 딸. 이보다 뭉클한 단어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은 밤이다.

2008/11/02 00:00 2008/11/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