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오는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총 나흘간에 걸쳐 『International Symposium for Art & Technology』를 개최한다. ‘제3의 공간 The 3rd Space’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해의 ‘마음의 피뢰침’에 이어 두 번째로 이어지는 국제AT학술대회다. Electronic Music, Performance, Robot Engineering, Interactive Art, Game & Mobile Art등 5개의 세션을 통해 동경대, MIT, 하버드 등 유수의 대학의 관련 석학들이 전하는 예술과 테크닉의 접목,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제 3의 공간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현재 재학 중인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 다가오는 11월 6일부터 7일까지 양일간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내 문화컨텐츠센터(C3) 2층 콘텐츠 홀에서 『2008 International Symposium on Culture Technology』를 개최한다. ‘Cultural Opportunities’라는 부제 아래 Walt Disney, FX Gear 등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IAMAS 등의 미디어아트 기관 들이 대거 참여해 열띤 토론의 장을 벌일 계획이다. 세부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캬. 제목하고는. (속된
말로) 아구가 이렇게 딱딱 맞는 영화를 보면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막판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는 추석 연휴 내내 조용한 흥행성적을 내면서도
농도 있는 짜임새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대략적인 플롯을 알고 갔던 터라, ‘이게 과연 이야기가 될까’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타고난 이야기꾼의 하드보일드는 빠른 후크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김기덕의 내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소.간.지
우려했던 강지환의 연기는 생각보다는 나았다. 특히 정적인 씬에서는
그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났지만, 되려 감정을 휘몰아치면서 들어가는 부분에서는 놀라울 만큼 노련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8할은 소지섭(이
영화 이후로는 소간지) 이 끌고 간다고 봐도 된다. 혹자는
소간지의 우수에 젖은 눈빛과 몸의 디테일이 ‘얼치기 스타의 후까시’와
어슷하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또는 소지섭의 연기는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이어지면서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고 평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소지섭의 경우에는 그 간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쭉- ‘그 안에 갇힌다 해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간지도 아무나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놈놈놈’에서 정우성이 보여준 수려한 카우보이놀이나 이 영화에서의 소지섭의 ‘간지
나게 담배 피우기’ 등은 후천적인 반복학습에도 기인하겠지만, 그보다는
타고난 ‘간지성’이 내재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즉, 그들의 기럭지는 덤이고, 기본기는
존재감이란 거다. 거기서 ‘간지의 정점’이 찍히는 거다. (주변의 한 친구는 소간지 때문에 영화를 두 번이나
봤다고 하니, 말 다했다. ‘놈놈놈’때도 말했던 거지만, 간지나는 것도 능력이다.)
영화와 폭력
엄연히 감독 난에 장훈이라는 두 글자를 보면서도 넓게 드리워진 김기덕의 그림자를 거두어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를 탑처럼 쌓아두고 아래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빼서 영화를 찍는 다는 통설처럼, 그는 응어리진 이야기 더미를 끌어내듯 후두두둑 뱉어낸다. 외람된
비교인지는 모르지만, 김기덕을 보면서 문득 김아타가 떠올랐다. 둘
다 내게는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이지만, 번뜩이는 재능을 지닌,
범상치 않은 이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철학적이고 변칙적이면서도
동양적인(나는 가장 동양적인 감독과 사진작가로 이 둘을 꼽겠다. 엄한
국악인을 갖다 붙이는 건 너무 일차원적이지 않은가.) 이 둘은 아마도 그렇기에 우리보다는 서양권에서
환영 받나 보다.
각설하고 김기덕은 영화에서 ‘영화와 폭력’이라는 상관없어 보이는 두 주제를 잘 배합하고 있다. 연기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다가 영화 속 폭력을 현실에서의 폭력으로 치환시켰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리얼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둘 다 현실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그 바깥 어디선가 유유자적하게
현실을 조소하는 듯한 분위기가 묘하게 다가온다. 잘 나가는 영화배우나 깡패나 삶이 진짜 같으면서도 가짜
같은 것은 비슷한 거 아니냐고 어르기도 한다. 결국 김기덕이 말하고 싶었던 건 영화의 의미와 그 안에
담기고자 하는 진정성에 대한 재고가 아닐까 한다. 현실을 대변하는 요소로서의 폭력은 오히려 더 영화적이다. 곧 죽어도 ‘연기’가
생명인 배우의 눈 앞에서 실제 사람을 죽이는 깡패의 액션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영화’가 있느냐고, 감독은 자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자체도 영화의 일부분이다. 영화 속에 영화가 있고, 또 그 안에 인물들에 내재된 각각의 영화(세계)가 있는 꼴이다.
여전히 남겨진 숙제
물론 김기덕이 여성을 배치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극중 홍수현이 소지섭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여는 부분은 생략된 서사가 많다. 주변인물들의 행동에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치기가 부족했고, 설명을 위한 컷이라고는 하지만 군더더기같이 느껴졌던 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소소하게 빛을 발하고 있어 기특하다. 아니, 멋지다.
통상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로 이해되지만, 특수한 경우에 있어서는 수평적인 관계, 나아가 쌍방향적인 관계일 때가 있다. 먼저 난 자로서 ‘스승’, 나중 된 자로서 ‘제자’로 명명되었을 뿐이지, 말 그대로 ‘청출어람’을 몸소 보여주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최근 수목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편의 드라마, MBC의 <베토벤 바이러스>와 SBS의 <바람의 화원>은 이와 같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음악과 미술이라는 장르 안에서 벌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다른 분야의 그것보다 민감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예술인의 특성 상 타인의 재능을 쉽게 감지할 수 있고, 반사적으로 그를 경계하게 된다.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경이로우면서도 두려운 무언가 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판’이 좁은 만큼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도 그 까닭이겠지만,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직업이기에 그를 위협하는 존재는 당연히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가 ‘살리에르 증후군’을 앓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가운에서도 영감의 끈이 오고 가고 자신 이외에 가장 큰 라이벌과의 한판 승부도 기대해볼 수도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 분)와 강건우(장근석 분)의 관계는 위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철저한 노력파로서 천재적 기질을 보였던 평생 라이벌에게 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굳히는 강마에에게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뛰어난 연주실력을 보여주는 강건우의 존재는 살아있는 트라우마와도 같다.
<바람의 화원>에서의 김홍도(박신양 분)와 신윤복(문근영 분)의 대결구도도 유사하다. 픽션이 많이 가미되었지만 동시대를 풍미한 두 화원의 엇갈리는 운명이 스승과 제자, 남자와 여자, 인정받은 예술가와 그렇지 못한 예술가로 대비된다. 신윤복의 당돌함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김홍도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두 드라마는 서양의 음악과 동양의 미술이라는 어찌보면 판이하게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를 관통하는 ‘천재와 천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강마에나 김홍도 모두 자신의 재능을 둘러싼 상처를 간직하고 있고, 현재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방어책을 고수한다. 그래서인지 공통적으로 괴팍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에 반해 그들의 제자들은 자신이 보고 느끼는 대로 솔직히 표현하고 지칠 줄 모르는 순수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것이 때때로 (상대적으로) 늙은 스승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숨 조임으로 다가오는 지 모르고 말이다.
언젠가 들었던 일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는 자신의 제자에게 절대 ‘100%’를 전수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뭐 그리 ‘쪼잔한 이’가 다 있나 했지만, 동종분야의 이들은 이를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치열한 ‘밥 그릇 싸움’에서 밀려나기란 시간문제라는 이유였다. 뭐 사정이야 제 각각이겠지만, 조금 더 훈훈한 분위기 안에서의 교감이 오간다면 좋을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감탄했었던 한 연주를 소개하고자 한다. 재미교포 재즈 색소폰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그레이스 켈리(16)가 기타리스트 대가 러셀 멜론과 함께 한 연주실황을 포스팅한다. 그녀에 관한 최근 기사도 여기에 같이 올린다.
지난 25일 광주 비엔날레에 다녀왔다. 예년보다 내용면에서 많이 부실해진 면모가 눈에 띄었다. 속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예상컨대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있어 작가 선정에 치열한 물밑경쟁이 있었던 까닭이 아닐까 싶다. 비교적 한산했던 방문일에는 몇몇 학교단체와 지자체의 방문, 소수의 민간방문객이 있었다. 12,000원의(성인기준) 입장료를 내면 비엔날레관을 비롯하여 의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인시장, 광주극장 등 5군데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다른 행사를 참관할 수 있다. 주전시관인 비엔날레관에서 눈에 띈 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의 작가나 그 지역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았다는 것인데, 연례적인 수준에 비해 조금 뒤쳐진 듯했다. 몇 개의 설치작품, 미디어아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사진이나 파인아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전시관은 작품수준 이외에도 전시관 설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하에 내려가면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쾌적하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고, 암실 전시 등을 보고 나오면 눈이 따끔거리는 등 통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에 비해 주전시관 뒤쪽에 위치한 광주시립미술관 내에서의 전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2년 전 여름 마드리드의 한 미술관에서 보았던 ‘Gordon Matta-Clark’의 전시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기획 아래 진행되고 있었고, 홍콩/대만 등지의 작가들이 ‘감각’을 이용한 인터랙티브 전시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두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시간관계상 급하게 방문했던 비엔날레 투어 중 마지막 목적지는 바로 대인시장이었다. 광주 도심의 충장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인시장은 예전에는 활발하게 운영되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느 재래시장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이러한 재래시장을 전시의 한 공간으로 설정하고 ‘일상 속의 미술’을 지향했다. 재래시장 내 간간이 빈 상점공간을 대여해 작가들이 입주, 작품활동을 하는 형태를 띤 것이다. 몇몇 상인과의 대화를 통해 시장 내부적으로도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관람객의 입장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투어로 꼽고 있었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이나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일 경우에는 시장의 분위기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전시가 나름의 설득력을 높였다. 그러나 투어버스에서 내린 후 특정한 이정표가 없다는 것과 현지의 코디네이터가 없는 점들이 운영 상의 미숙함으로 지적될 만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는 ‘국제비엔날레’의 명목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을 보여준 것 같아 착잡했지만, ‘도약을 위한 과도기’정도로 감안한다면 내년에는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INTERFACE의 이슈들을 다루는 블로그를 소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도 한 (나름 절친) CT 대학원 박사과정의 Andrea와 같은 과정의 미혜씨, 그리고 서강대 연구원으로 있는 Noah가 이끌어가고 있는 이 블로그는 타이틀부터가 범상치 않다. ‘식물도 날 수 있다’는 발상으로 HCI뿐 아니라 인터페이스의 영역을 넓혀서 (심지어)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생활(실천)예술의 영역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 멤버들 모두 바쁘기에 정기적인 포스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번뜩이는 시각을 맛볼 수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쯤은 애교로 눈 감아줘야 하지 않을까. 여기와 옆의 링크메뉴에도 링크해 놓았으니 한번씩들 들러주시길. (쌩유베리감사)
+이들 모두 뉴욕, 캘리포니아, 프랑스, 캐나다, 한국 등지에서 HCI, 로봇연구, 게임산업, 산업디자인,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고 접목해 나가는 Multiplayer들이니 주목하셔도 좋을 듯. 이들 작업관련하여 컨택하고 싶으신 분들은 직접 연락하셔도 좋고, 제게 문의하셔도 됩니다.
주말께 삼청동에 가면 DSLR족들로 넘쳐난 지 일년이 넘어간다. 딱히 동호회 출사가 아니더라도 불타는 개인적 열의를 가지고 이것저것 프레임에 담아보려는 사람들로 그 자잘한 골목들이 북적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활발한 ‘기록하기’의 역기능인지 몰라도 블로그와 싸이홈피를 통해 자신들의 아지트를 ‘까발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점점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는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애니웨이, 이렇게 ‘이미지로서의 기록’이 과도기를 겪고 있는 지금. 나 자신도 한때 무거운 DSLR을 들고 여행지를 누비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이런 열심이 부질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 같다. (신기한 일이지만, 나를 포함해-요즘 세대에서는 모든 게 너무 흔해져서 관심을 가지다가도 싫증을 내는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다. 소비를 위한 소비, 좀 무서운 구석이 있다.)
아직도 동행이 없는 여성 고객에게는 무섭기 짝이 없는 테크노마트(용산 전자상가도 별반 다를 바 없다)에 사전조사로 무장한 채 발을 들였다. 에스컬레이터 주변에는 언변과 상술이 뛰어난 판매자들이 즐비해있기에 일부러 후미진 곳을 찾아(그래도 너무 후지면 곤란하다. 적정선을 찾는 게 관건) ‘심도 있는 흥정’을 나눈 후 디카를 구입했다.
수년 전에 당시 디카 중에서는 가장 얇고 쌔끈한 디자인을 서보였던 CASIO EXLIM시리즈를 썼던 까닭에 (향상된 기능을 탑재했지만) 상대적으로 묵직한 감을 가지고 있는 요즘 모델들에 살짝 적응이 안 되었지만, 한때 디카계의 절대강자였던 CANON을 훨씬 능가하는 멋드라진 LEICA 렌즈를 장착한 PANASONIC의 LUMIX시리즈를 살펴보고는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밌게 생각한 건 주요기능으로 밀고 있는 ‘고속연사’기능인데, 연속촬영으로 무빙을 가미해가면서 흔들림 없이 결과물이 나온다. (한 번씩들 테스트해 보시길) 이 기능은 (체험 상) 정지동작을 앵글만 바꿔가며 찍기보단 움직이는 물체/인물을 촬영 시 탁월할 효과를 낸다. 동영상에서의 한 프레임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아무튼 이 ‘예쁜이’도 언제 가서는 홀대하겠지만, 당분간은 좀 예뻐해 주지 않을까 싶다. 텍스트도 좋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지에 집착하는 기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듯.
isAT2008은 어떻게 보러가는거에요? 등록절차없이 그냥가서 보면되나요?
네. 등록 따로 없이 가서 봐도 될듯.
갈꺼면 나한테 얘기하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