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I - 사회책임투자
최근 SRI펀드가 대거 출시되면서 SRI, 즉 사회책임투자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다. 기업들 또한 자신들의 이윤추구에 있어 공영성(사회적 기여도)이 보장된 부분이니만큼 SRI 사업을 늦출 하등의 이유가 없어보인다. 그만큼 똘레랑스와 노블리스오블리주를 기업적인 시각으로 잘 포장한 것이 바로 이 SRI이기 때문이다.

사회책임투자의 시작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퀘이커 교도들의 모임이다. 1758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연간모임'에서 퀘이커 교도들은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던 '노예시장'에 보이콧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바로 SRI의 시초로 보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하여 SRI의 개념을 정착시킨 것이 감리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존 웨슬리(1703-1791)이다. 그는 <돈의 사용 The Use of Money>라는 유명한 저작을 통해 사회적 투자에 대해 '기업이 이웃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사업은 배제해야 하는 정신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근로자들에게, 나아가 지역사회에 (건강 상의)해를 끼칠 수 있는 제철, 화학 사업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이나 미 전역을 통해 이뤄졌던 '베트남 반전운동', '핵무기 확산 방지' 등을 통해 급속히 발전해왔다. 미국에서 종교단체에 의해 주도되어 온 (사회)사업이니 만큼 무기, 총기, 담배, 술 등과 같은 사업들은 SRI의 선상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SRI가 한국에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몇몇 선도기업을 통한 자각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는 다양한 자선/기금모금 사업, 웹2.0을 통해 진화된 형태의 나눔(기사참조)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오늘자 조선일보 보도에서도 보여지듯(조선일보 기사) SRI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정의 조차 되지 않고 있음은 우리의 SRI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조선일보는 'SRI, 사회책임투자'를 박스형 정보로 다루면서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라는 본래 개념이 아닌, Sustain Responsible Investment라는 단어를 채택,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과거에 비하면 척박했던 기부자선문화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늘 문제는 본연의 '정신'보다 '외양'이 먼저 들어오기 때문에 그로인한 오해와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눔의 정신은 비단 '위로부터 아래로'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눈으로 옆을 향해 뻗어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기업들의 SRI가 이와 같은 눈높이에 입각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형 SRI는 한낱 '셀러브리티 자선 파티의 샴페인 한 잔'에도 못 미치는 질과 양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충고 하나! SRI에 있어서의 철칙은 의식하지 말라. 꾸준히 하라. 마음을 다해 하라. 그러면 스스로 알려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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